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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의 사마디(멸진정)
• 작성자 : 붓다야나  (211.114.***.135) 포인트레벨 : 36 llllllllll
• 작성일 : 2014-10-31 11:40:56 조회 : 4,044  |  추천 : 377

§41 samāpatti-bheda

Phala-samāpatti-vīthiyo pan' ettha sabbesam pi

yathāsaka-phala-vasena sādhāraṇā va. Nirodha-samāpatti samāpajjanaṃ

pana anāgāmīnañ ceva arahantānañ ca labbhati.

§41 定(정)의 구별(1)

「한편, 여기(깨달음)에서 과정(果定)의 로(路)는 각자의 4과(果)에 따라 모든 경우에 공통으로 생겨난다. 그러나 멸정(滅定)으로의 입정(入定)은 불 환자와 아라한에게만 가능하다.

   

성자들의 사마디(멸진정)

 

  사마디명상의 경우는 사마디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 된다. 색계의 사마디는 5가지이다. 무색계의 사마디는 4가지이다. 합해서 9가지가 된다.

 

  수행자가 처음으로 사마디에 도달하는 것은 어떤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는 것과 같다. 시험을 치를 때의 자신과 시험에 합격했을 때의 자신은 다르다. 전과 달라서 합격한 후에는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다.

 

  수행자가 제1사마디에 도전할 때의 마음은 욕계 속에서 회전하고 있다. 사마디에 도달한 순간에 색계의 마음이 나타난다. 그것으로 인식의 차원이 바뀌게 된다. 상위의 차원에 도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번뇌를 기능하지 않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동일한 수행자가 제2선정에서 제5선정까지 나아갈 때도 인식의 차원은 향상해 간다. 색계의 제5선정에 도달한 수행자는 무색계의 차원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 무색계는 물질에 결코 의존하지 않는 마음을 만들어야만 도달하는 경지이다. 그쪽에도 4단계가 있다.

 

  다음으로 선정에 든다(samāpajjanaṃ)는 언어가 있다. 그것은 도달한 선정을 재차 경험하는 것이다. 처음으로 선정을 경험하는 경우, 수행자는 능숙해져서 상위 차원의 자격을 획득한다. 같은 선정에 다시 들어보면, 선정의 평온함을 다시 한 번 경험하게 될 뿐이다. 새로운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니다.

 

  수행자는 선정에 든 경험이 있는 쪽이 좋다. 명상을 가르치는 경우에 명상에 성공했다면, 되풀이해서 같은 선정에 드는 훈련을 하시오라고 지도한다. 의사, 변호사 등의 직업은 자격을 취득하고 나서 인턴 수련을 받는다.

 

   프로로서의 인정은 인턴 수료 이후이다. 그러나 새로운 자격을 취득한 것은 아니다. 사마디에 드는 훈련은 인턴의 수련과 닮아 있다. 이 훈련 후에 좋아하는 시간에 선정에 들 수가 있다.

 

  위빳사나(관찰명상)는 사마타명상과 다르다. 사마디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 실천의 방법은 달라도 위빳사나도 명상의 일종이다. 집중력이 생겨나고 마음은 향상된다.

 

  명상에 성공하는 경우에 처음에는 예류자가 된다. 예류자가 되는 순간에는 예류도의 마음이 1회 일어나고 예류과의 마음이 2,3회 일어나서 끝난다. 예류자는 어떤 관리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재차 관찰명상을 실천하여 예류과에 도달한 순간의 경험을 맛볼 수는 있다. 그 경우에 예류도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Anuloma의 마음 다음으로 예류과의 마음이 연속해서 일어난다. 그 시간은 수행의 경험을 되풀이하는 것으로 연장도 가능하다. 일래·불환·아라한의 경지에 대해서도 방식은 동일하다.

 

  여기까지 쓴 것은 소개(紹介) 문서(文書)이다. 깨달음에 도달한 사람에게만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선정이 있다. 그것은 nirodha-samāpatti(니로다 삼마-빳띠, 멸진정 滅盡定)이라 한다. 불환자와 아라한만이 이 samāpatti에 도달할 수 있다.

 

  Samāpatti란 선정에 드는 것이다. 선정에 들면 수행자의 마음은 동요하지 않는다. 자신이 도달한 사마디의 마음이 연속해서 이어진다. 동일한 마음이 연속해서 일어나는 일은 일상생활에서는 있을 수 없다.

 

  일상적인 인식으로는 많은 정보를 인식하거나 판단해야 한다. 아비담마심리학에서는 사람이 꿈도 꾸지 않고 완전하게 숙면을 취하고 있을 때에 유분심이 연속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숙면의 시간은 길지 않다. 다음은 꿈을 꾸거나 잠결 속에서 몸을 뒤척이기도 한다. 마취 주사를 놓아 강제로 신경회로의 기능을 저하시키지 않은 한, 장시간 숙면상태로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마디에 든 경우에도, 같은 마음이 연속해서 일어난다는 점에서는 숙면상태와 닮아 있다. 그러나 사마디의 마음은 유분심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사마디의 마음은 강력하다. 희열감을 만들어 낸다.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 숙면상태는 아니다.

 

  Nirodha-samāpatti는 보통의 사마디와 다르다. Nirodha-samāpatti에 든 경우에는 마음의 흐름이 완전히 정지한다. 하나의 마음만이 지속한다는 진귀한 상황도 뛰어넘고 있다. 마음이 멈춘다는 것은 결코 이해 가능하지 않다. 일반 상식으로 말하면 마음의 정지는 생명의 죽음이다.

 

  수행자가 미리 정한 시간이 끝나면 육체 속에 다시 마음이 나타나서 활동을 시작한다. 이 마음이 정지한 시간은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설명할 수 없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인식하지 않는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동요는 일어날 수도 없다. 속세간적으로 보면「허무상태(虛無狀態)」와 같이 보이지만 석가모니께서는 부정적인 단어를 사용하시지 않으신다.

 

  구극의 행복 상태, 구극의 평온 상태, 고(苦)가 완전히 없는 상태 등의 표현을 사용하신다. 전문용어를 빌리면 열반에 들어 있다는 의미이다. 멸진정(滅盡定)이라는 이 선정은 성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더라도 멸진정에 들 수 있는 분은 불환자와 아라한뿐이다. 게다가 불환자와 아라한은 사마타명상으로 얻어지는 색계의 5선정이나 무색계의 4선정도 필요하다.

 

  위빳사나명상만을 실천해서 아라한이 되어도 멸진정에는 들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진짜 이유는 잘 알지 못한다.

 공지-붓다의실천심리학 연재 [1] 붓다의 길따라 선원2012/04/084894135
1454 수행의 권장 그리고 결어와 기원 [2] 붓다야나2014/10/31321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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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1 멸진정에 드는 과정  붓다야나2014/10/31349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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