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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와다 불교의범 및 신행생활] 15
글쓴이 : 등명Padipeyyo ()  2020-11-13 02:13:26, 조회 : 8, 추천 : 1


15. 평상시 생활에서 테라와다 스님들에게 필요한 물품

「평상시의 생활」이라는 것은 우기중의 「우안거」와 법을 전하기 위해 유행하는「유행기간」을 제외한 기간의 생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안거기간」뿐이고, 평상시의 생활과 유행의 기간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또 안거기간도, 유행기간도 평상시의 생활의 연장으로서, 오히려 특별히 정하는 것이 적당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유행」의 생활은 1개월에서 2개월 정도의 장기간도 있지만, 1~2주의 단기의 유행은 평상시의 생활 속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런 생활에서 출가한 스님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들이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는 가사 3벌과 발우입니다.
6가지 필수품은 가사 3벌과 발우, 좌와구, 녹수낭이며, 8가지 필수품(atthaparikkhara)은 가사 3벌(ticīvara)과 발우(patta),  녹수낭(parissāvana), 면도기(vāsi), 바늘(sūci), 실(kāya-bandhana)이 포함됩니다.
그 외에도 좌와구(nisidana), 발우를 담는 자루(pattatthavika), 발우를 운반하고 보호하기 위한 천조각(coloka), 신발 주머니(upāhanatthavika), 약품 주머니(bhesajjatthavika), 골무 주머니(paṭiggahathavika)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출가한 스님들에게 가장 많이 보시되는 것은 가사를 비롯한 필수품과 비누, 칫솔, 치약, 휴지, 양초, 향, 면도기, 마시는 차 종류, 센달, 필기구와 불교 서적들, 자명종 시계, 플래시와 같은 생활용품들로 출가생활에 적합한 것들입니다.
출가자에게서 이러한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재가자의 보시에 전적으로 의지합니다. 기독교의 수도원과 같이 자급자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1) 가사(pamsukulacivara)
가사에 대해서는 부처님도 분소의를 입지 않으셨습니다.
마하가섭(Mahākassapa)은 분소의를 항상 입고 있어서 「두타 제일」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이 분이 예외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마하가섭이 나이를 먹은 몸에 분소의를 입고 있는 것이 무거워 보여, 마하가섭의 분소의와 자신의 가사를 교환되려고 했습니다. 이전에 마하가섭은 자신의 훌륭한 가사와 부처님의 검소한 가사를 교환했던 적이 있는데, 마하가섭은 그 이후로 그 분소의 가사를 계속 입고 있었다는 전승이 있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부처님은 분소의를 입고 있지 않은 것을 증명합니다.
또 추운데 엷게 입고 견디라고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추우면 따뜻하게 겹쳐 입고, 더우면 벗는 것이 합리적인 자세입니다. 그러나 알몸은 금지되고 있습니다.
가사로 만들 수 있는 천은 나무껍질이나 모피는 금지되고 있지만, 견직물, 모직물 등의 소재는 허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즐겨 사용하는 천은 나일론, 면, 모, 견직물 등입니다. 비단은 허용하지 않았는데, 당시에 비단은 누에가 누에고치를 찢고 밖으로 나온 뒤에 그것을 사용하는 것이기에, 그것도 간접적인 살생에 해당하기 때문에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추운 곳에서는 가죽 샌들이라든지, 모피로 만든 좌와구나 어깨에 덮쳐 입는 숄 등은 허용하셨습니다.
현재 테라와다 불교의 스님들은 오렌지색이나 갈색, 황색등의 가사를 입고 있지만, 부처님 시대의 스님들도 이 색의 가사를 입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감청색(nīla), 진흙색(kaddama), 흑갈색(kāḷasāma)이라는 생기 잃은 색을 입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율장에 의하면 가사의 원어인 kāsāya 혹은 kāsāva는 「식물성 염료로 물들인 중간색의 생기 잃은 색의 천」이라고 정의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도에서 빨리어로서의 kāsāya는 적갈색이나 황색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경전에는 여섯 종류의 것으로 가사를 물들이도록 적고 있습니다. 나무뿌리, 수목, 나무껍질, 나뭇잎, 꽃, 과실로 물들일 수 있지만, 가사의 색은 삼장에서는 쓰여 있지 않습니다. 까사야 색이라고만 쓰여져 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80종류의 가사 색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적색이 섞인 황색, 생기 잃은 황색, 떫은 감색, 밝은 주홍색, 선명한 오렌지색, 검붉은 색은 입어도 좋은 가사 색이지만, 푸른 남색, 황색, 적색, 적자색, 등색(귤껍질의 빛깔과 비슷한 조금 붉은 듯한 노란색), 복숭아색, 흑색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또한 테라와다 스님들이 입는 가사의 색이나 재질로 계급이나 신분을 나누는 것도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5조 가사라든지, 7조 가사라든지, 9조 가사라든지, 내지 25조 가사라든지를 스님들의 신분에 따라 구분하여 입지만, 원래 가사는 신분의 구별을 나타내는 도구가 아닙니다. 다만 테라와다 각각의 사원에서는 가사의 색을 통일하여 입는 경우는 종종 있습니다.
또한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살색이 금빛이므로, 어떤 색의 가사를 입어도 금빛에 물드는 것이라는 전승이 있습니다.
가사에는 3종류가 있는데 下衣(antaravāsaka), 上衣(uttarāsaṅga), 重衣(saṅghāṭi, 大衣)로 불립니다. 모두 네모난 천이지만 천 자체의 가치를 잃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재단해서 대소의 천 조각을 봉합해 만들어 집니다. 말하자면 천 조각을 꿰어 붙이는 일인 셈입니다. 잘라진 조각들을 기워 입으면 출가자에게 어울리며 아무도 탐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의는 허리 아래를 가리는 아랫가사로 입고, 상의는 몸 전체를 감싸는 윗가사로 입는데, 보통은 이 2 종류의 가사를 입고 생활합니다. 중의는 평상시에 왼쪽 어깨에 걸치고 있다가 추울 때나 밤에 잘 때에 이불 대신에 사용하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의 가사를 가지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가사의 형태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 기본적인 형태에서 조의가 첨가되어집니다. 그래서 중의에는 27조 15장 1단도 있습니다.
가사의 길이는 하의는 1 x 2.5미터, 상의와 중의는 2 x 3미터를 기본으로 하여 보통 4종류의 크기로 만들어집니다.
하의 ;
100 cm. (100 x 240 cm.) - 키 160 cm 이하.
100 cm. (100 x 250 cm.) - 키 160 ~170 cm.
110 cm. (110 x 260 cm.) - 키 170 ~180 cm.
120 cm. (120 x 270 cm.) - 키 180 cm 이상 혹은 비대한 몸.
상의, 중의 ;
190 cm. (190 x 300 cm.) - 키 160 cm 이하.
200 cm. (200 x 300 cm.) - 키 160 ~170 cm.
210 cm. (210 x 310 cm.) - 키 170 ~180 cm.
220 cm. (220 x 320 cm.) - 키 180 cm 이상 혹은 비대한 몸.

가사를 입는 방법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서 입는 방법을 「편단우견」이라고 하는데, 존경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큰스님께 인사드릴 때나, 부처님께 삼배드릴 때는 이렇게 입습니다. 외출할 때는 「통견」이라고 해서 양어깨를 가리고 입습니다. 즉 일반적으로 사원 내에서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어도 괜찮지만, 외출할 때는 양쪽 어깨를 드러내선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또 이외에도 작업이나 청소 등을 할 때에 입는 조끼(앙사로 불린다)가 있습니다. 이것은 왼쪽 어깨로부터 걸쳐서 오른쪽 겨드랑 밑으로 입어서 오른쪽 어깨가 드러나도록 하여 엉덩이를 덮는 길이 정도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현재의 테라와다 불교국에서는 각 나라나 교단에 따라서 가사를 입는 법에 다소의 차이가 있습니다.
가사를 입고 벗을 때나 가사를 사용하는 순간순간에 항상 이렇게 회상해야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가사에 대해 올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다만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파리와 모기, 비바람과 태양열, 여러 곤충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다만 몸을 가리고 수행하기 위해 이 가사를 사용하겠습니다.”
샌들을 신는 일도 허용됩니다. 그러나 탁발을 위해서 마을에 들어갈 때는 맨발입니다.
머리카락을 기르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은 2개월간 혹은 손가락 두 마디(dva aṅgula : 1 앙굴라는 3/4inch인 1.9cm이므로, 손가락 두 마디는 약 4cm)의 길이까지 자란 것은 허용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스리랑카의 스님들 머리가 더벅머리가 될 때까지 깍지 않은 것을 볼 수도 있습니다. 보통은 보름에 한 번씩 삭발을 합니다. 즉 음력 그믐과 14일에 사원의 적당한 곳에 삼삼오오 모여 서로서로 삭발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을 전후하여 포살을 행하기에 그 전날 삭발하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출가자이므로 머리카락을 잘라야 하는데, 경전에는 처음 출가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서 다시는 자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불상에는 나발이 있는 모습으로 부처님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부처님께서 출가 이후에 삭발하는 모습이나 부처님의 머리카락 길이에 대한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2) 음식(pindiyalopabhojana)
불교의 출가 수행자를 비구라고 하는데, 이것은 「(윤회의) 두려움을 보는 자」, 「밥을 청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비구는 탁발에 의해 밥을 얻습니다. 거기에는 부처님도 예외가 아닙니다. 출가 수행자가 탁발에 의해 밥을 얻는다는 것은 불교 이전부터 있던 인도의 풍습입니다. 바라문교의 수행자는 조석으로 2번, 발우를 가지고 가 밥을 청하는 것이 일과였습니다. 당시의 인도는 그렇게 많은 출가 수행자들을 거두어 먹일 수 있을 만큼 풍부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인도에서는 세속인은 재물을 보시하는 것으로 공덕을 쌓으면 사후에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탁발 수행자의 입장에서 보면, 보시를 받아주는 것으로 시주자에게 공덕을 쌓게 하는 이치이기 때문에, 보시를 받아도 결코 예를 표하거나 고맙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당시의 세속인이 반드시 기분 좋게 보시를 행한 것만은 아닙니다. 탁발에 나가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일도 있고, 고함소리를 듣거나, 모욕을 당하기도 하고, 쫓겨나기도 하며, 개에게 물어뜯기기도 하며, 두들겨 맞는 일도 드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출가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면 먼저, 앉아서 명상 수행을 실천하고(nisajjā, 좌선), 그리고 탁발하러 나갔습니다. 마을에 탁발하러 나가는 것은 오전 중에 한차례뿐입니다. 탁발하러 갈 때는 걸음을 분명히 알아차리면서 걸어가야 합니다(caṅkama, 경행). 마을에 들어가면 조용하게 집집을 돌면서, 입을 다물고 집의 입구에 서 있다가, 탁발할 수 있든, 하지 못하든  마음에 자비심을 내고나서 떠납니다.
탁발 중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고, 밥을 청하는 말도,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을 말해서도 안 됩니다. 주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소리 지르거나 화를 내지 않고, 인사하지도 흥분하지도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데 충분한 음식을 얻었으면 신속하게 마을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얻은 탁발의 과다에 의해 일희일비 하지 말고, 음식을 얻을 수 있어도, 얻을 수 없어도, 이것으로 만족한다고 태연하게 돌아갑니다. 사원이나 숲으로 돌아오면, 얻은 음식을 혼자서든 동료 출가자와 함께이든 먹습니다. 식사는 오전 중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충분한 밥을 얻을 수 없었던 경우에라도 「물을 마시는 것으로 만족한다.」라고 장로게송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과 출가제자들이 밭일을 하여 스스로 쌀이나 보리, 채소를 만들어 먹지는 않았습니다. 또한 출가자가 경제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원 안이나 근처에 재가자가 있어서 그것을 대행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습니다.
출가자에게 요리가 완전하게 금지되어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일단은 금지되어 있지만, 예외로 기근 때에는 허용되었습니다. 기근이 들면 일반인들도 먹고살기 힘들뿐 아니라, 출가자가 탁발할 수 없어 굶주리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제자들이 기근으로 인해 3개월간 스스로 요리하는 지경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는 진수성찬을 차려 먹은 것이 아니라, 나무뿌리, 죽과 경단으로 겨우 기근을 견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음식을 스스로 조리하여 먹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음식을 만들 때의 분주함과 음식에 대한 탐착과 분별심을 일으키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리탑에 존경을 표할 목적으로 공양물을 올리기(cetiyapūjāya) 위해 요리하는 것은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목적이든 음식물을 스스로 조리하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만 합니다.
공양할 음식을 얻는 방법으로서는 탁발이 기본입니다. 탁발로 재가자가 요리한 음식을 받는 것입니다. 이 밖에 재가자의 집에 초대받아 가서 먹는다든가(청식), 재가자가 요리한 음식을 사원에 가져온 것은 허용됩니다. 사원 안에서 재가자가 요리해서 스님께 식사를 제공하는 일도 빈번하게 행해집니다.
식사는 건강을 유지하여 수행에 지장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절제 되어야 합니다. 결코 단식 등의 고행이 권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공양하려고 할 때 이와 같이 독송하는 것입니다.
“제가 공양 받은 음식에 대해 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맛을 즐기기 위함도 아니요, 배부르게 먹기 위함도 아니요,
몸을 살찌우기 위함도 아니요, 보기 좋게 가꾸고자함도 아니니,
다만 건강을 해치지 않고, 이 몸을 유지하여 청정수행을 돕기 위함입니다.
바른 관찰로써 배고픔의 오래된 느낌만 제거하고
배부름의 새로운 느낌은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이와 같은 모든 문제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져
계속 평온하게 머물며 수행하기 위해 이 공양을 받겠습니다.”

출가자의 식사는 하루 한 번의 탁발을 통해 하루에 한 끼가 기본입니다. 한 끼뿐이기 때문에, 한 번에 3회 분량의 양을 먹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한 끼」는 1회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전 중에만」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식사를 대략적으로 나누면 오전, 오후, 밤이 됩니다. 시간적으로 나누어 6시부터 12시, 12시부터 18시, 18시부터 0시까지라고 합시다. 이렇게 나누는 방법으로 아침 6시부터 12시까지의 식사를 「한 끼」라고 합니다. 율장에 자세한 설명이 있습니다. 출가자는 자신의 한 끼분을 오전중이라면, 몇 번 나누어 먹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밥을 먹고 나서 「오늘의 식사는 이것으로 마칩니다.」라고 결정하면, 그 날은 오전중이라도 다시 먹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침 6시에 죽을 먹고, 또 11시 30분에 점심식사를 취하는 두 번 먹는 경우라도 계율 위반(nissaggiya pācittiya dhamma, 捨墮法)은 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식사의 종료 선언을 언제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경우를 예로 들겠습니다.
아침 일찍 죽(yāgu)을 먹습니다. 탁발을 나갈 거리에 따라 죽을 먹는 시간이 달라지는데, 보편적으로 사원에서 재가자들이 준비한 죽을 탁발 나가기 전인 아침 6시~7시 사이에 먹습니다.
죽을 먹으면 다섯 가지 이익이 증장되는데(ānisaṁsā), 즉:khuddaṁ paṭihanati(굶주림을 물리친다), pipāsaṁ paṭivineti(갈증을 제거한다), vātaṁ anulometi(몸 안의 분위기에 순응한다), vatthiṁ sodheti(방광을 청정히 한다), āmāvasesaṁ pāceti(소화되지 않고 남은 음식을 몰아낸다).
죽을 먹은 후 오전 중(보통 7시~10시)에 한번 마을을 돌며 재가자가 발우에 담아 주는 음식을 받아오는 탁발을 행합니다. 출가자는 음식을 얻기 위해 어떤 생산 활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재가자의 공양물 보시로 살아갑니다. 만약 물과 이쑤시개를 제외하고는 재가자가 보시한 공양물이 아닌 음식을 입에 넣는다면 계율을 위반하게 됩니다. 설사 주인 없는 나무에서 떨어져 길에 뒹구는 과일 한 알도 주어지지 않은 것이라면 입에 넣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다만 탁발이 기본이지만, 더불어 스님들에게 공양청을 하는 청식(請食) 또한 허용되어 있습니다.  
탁발이든 청식이든 출가자가 먹는 음식물에 대해서는 특별한 제약은 없습니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고기를 먹는 것이 반드시 금지되고 있지 않습니다. 「삼종의 부정육」과 「10가지 고기」 이외는 먹어도 괜찮습니다. 삼종의 부정육이라는 것은 보고·듣고·의심이 가는 더러움이 있는 고기를 말합니다. 즉, 자신을 위해서 죽이는 것을 본 고기, 자신을 위해서 죽였다고 하는 사실을 신심이 두터운 사람으로부터 들은 고기, 자신을 위해서 죽였다고 의심이 가는 고기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위해서 죽이는 것을 보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죽였다라고 듣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죽인 것이라고 의심가지 않는 고기라면 먹어도 괜찮습니다. 이 3가지 조건을 충족시킨 고기를 「삼종의 정육」이라고 말합니다.
재가자가 스님들을 초청하여 공양을 대접할 때에도 이 조건이 적용되기에 이런 이유로 스님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동물이나 생선 등을 직접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이거나 하여 대접해서도 안 되며,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식당 등에서 살아있는 생선회 등을 대접하는 것도 남을 시켜 죽이는 행위에 들기에 먹어서는 안 되는 부정육입니다. 또한 초청하여 공양을 올릴 때는 “이 고기나 생선은 3종 정육이니 안심하고 드세요!”라고 말하면 스님들이 의심 없이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인육은 물론 코끼리·말·개·뱀·악어·사자·호랑이·표범·곰의 고기 등 특수한 10가지 고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더불어 탁발할 때 받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당연히 10가지 고기와 삼종의 부정육이 첫 번째이고, 다른 하나는 생으로 된 곡물(āmaka dhañña), 즉 쌀, 보리, 밀 등의 조리되지 않은 곡식을 받아선 안 됩니다. 조리되지 않은 곡물류는 생명력이 있습니다. 출가자는 그것을 스스로 조리해 먹을 수 없습니다. 쌀, 대두 등을 물에 담구어 며칠 두면 싹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런 것을 탁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식물도 생명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날고기를 탁발 받는 것을 피해야 합니다.
날 육고기, 날 물고기의 경우 이미 죽어 있는 생명이 없는 것이라고 해도 날것으로는 탁발 받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은 간혹 생으로 고기를 먹는 습관이 있지만, 출가자가 그 날고기를 먹는 것은 품위 없는 행위이고 생명에 대한 자애심이 없어질 우려가 있기에 조리되지 않은 날고기는 탁발 받아서도 먹어서도 안 됩니다. 재가자가 일식집에서 회를 대접하는 청식도 물론 안 됩니다. 하물며 스스로 찾아다니며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출가자는 음식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만족해야 하기에 음식에 대한 투정을 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더 나은 음식을 요구하거나 찾아 다녀서도 안 됩니다. 그러기에 재가자는 출가자에게 무었을 먹고 싶은지 묻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출가자가 오전 중에 먹는 음식물은 단단한 음식(khādaniya)과 부드러운 음식(bhojaniya)의 2종입니다. 부드러운 음식은 쌀죽(odana), 응고된 우유(kummāsa), 밀가루떡(sattu), 생선(maccha)이나 고기(maṃsa)로 만든 죽이 이에 해당하는데 참깨·콩·쌀의 삼종을 삶은 죽, 유미죽, 요구르트죽, 어육죽, 팥죽, 참깨죽 등이 경전의 기록에 보입니다. 단단한 음식은 쌀·조·보리·수수 등으로 만든 밥, 쌀이나 보리 가루에 요구르트나 꿀을 발라 말린 경단, 휴대하기 편리하게 건조시킨 주먹밥이나 짜빠티 종류, 깨물어 씹어 먹어야 하는 과일이나 열매, 야채 등의 먹을거리를 말합니다.
그 외에 비시라도 먹고 마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마실 수 있는 주스류인 비시약(yāmakālika).
아플 때 7일 동안 간직하며 언제든지 복용할 수 있는 버터(sappi), 연유(navanīta), 기름(tela), 꿀(madhu), 설탕(phāṇita) 등의 칠일약(七日藥, sattāhakālika).
평생 약으로 간직하며 먹을 수 있는 강황이나 생강과 같은 뿌리약이나 소금, 혹은 마시는 구토약, 바르는 가루약 등의 진형수약(盡形壽藥, yāvajīvika)이 있습니다.
다만 칠일약과 진형수약은 아플 때만 사용하는 약이기에, 실질적으로 비시에 먹을 수 있는 것은 묽은 주스류뿐입니다.
이와 같이 오전(6시~12시)에 한 번으로 끝내야 한다는 규정만은 철저하게 지켜져 왔습니다.
만약 탁발해 온 음식을 먹고 난 후 남았다면 잔식법(殘食法)에 따라, 󰡐나는 다 먹었습니다. 이것은 남은 음식입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선언함으로써 그 음식들을 잔식으로 만들어 이미 식사를 마친 출가자나 미처 먹지 못한 다른 사람들도 원하면 먹을 수 있게 해야 하고, 그래도 남으면 벌레가 살지 않는 곳에 버려야 합니다.
또한 점심시간에 식사를 하다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면 잔식한 것으로 간주되어 그날은 다시 먹을 수 없게 되기에 주의해야합니다.
또 그 날 받아온 음식은 반드시 그 날 오전 중에 모두 소비해야 하며, 매일 탁발 나가는 행위가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할지라도 음식물을 저장해 두었다가 먹어서는 안 됩니다. 음식물을 정사 안에 저장하는 것(anta-vuttha)도, 음식을 정사 안에서 끓이는 것(anta-pakka)도, 비구 스스로 끓여 먹는 것(sāma-pakka)도 모두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는 불필요한 음식물을 소유함으로 인해 발생하게 될 여러 가지 번뇌를 막기 위함입니다.
음식을 받는 발우는 철(ayo)이나 흙(mattikā)으로 만듭니다. 나무나 돌로 만들어진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요즘은 금이 가면 수리하기 편리한 금속제를 가지고 발우를 만드는 것이 보통입니다.
발우는 3가지 크기가 있는데, 큰 것은 4되 반, 중간 것은 3되, 작은 것은 1되 반 정도 되기에, 큰 것과 작은 것은 음식물을 담을 수 있는 양이 3배정도의 차이가 납니다. 보통은 직경 30cm정도의 위가 원만하게 안으로 굽어진 반원형을 취하게 됩니다. 발우에는 네 개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는 선이 세 바퀴 발우 끝 주둥이를 둘러 그어져 있습니다. 즉 발우는 하나뿐이기에 여기에 밥이나 반찬을 함께 받게 됩니다. 발우에는 뚜껑이 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탁발하며 이동할 동안에 먼지 등이 들어가지 않게 발우 가리개를 사용하고, 둥근 반원형의 발우를 바닥에 두기에 용이하도록 발우 받침을 사용합니다. 또한 발우를 보호하고 운반할 때 편리하게 하기위해서 발우 보자기를 사용합니다.
출가자는 발우없이 손으로 음식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발우 하나를 수지해야만 합니다.
출가자가 소유할 수 있는 발우의 수는 기본적으로 하나뿐이지만, 그 이상 여분의 발우(atireka-patta)는 10일 이내에서 소지(adhiṭṭhāna)하는 것이 인정됩니다. 그 10일안에 지금까지 사용하던 발우의 수지를 중지하고 새로 얻은 발우를 취하여야 하는데, 사용하던 발우는 정시(淨施, vikappanā : 분별이란 의미인데 소유권을 명확히 분별한다는 것이다. 즉 이 발우를 그대에게 정시한다든지, 이 발우의 청정을 위해서 그대에게 준다라고 발우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하여 보관(소유권을 명확히 한 후 이 발우를 다른 도반을 대신하여 당신이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 것이다)하든지, 아니면 다른 비구에게 주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10일이 지나면 사타법 21조를 범하게 됩니다. 사타법을 범한 비구는 그 「여분의 발우」를 상가나, 몇 명의 비구들, 혹은 한 사람의 비구에게 내어놓고 참회를 구해야 합니다. 상가의 경우는 유능하고 총명한 비구가 사타법을 범한 비구의 참회를 받고 나서 단백갈마를 행하여야 합니다. 그런 다음 그 「여분의 발우」를 사타법을 범한 비구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또한 출가 비구가 소유하고 있는 발우가 수리하고 메꾸어야 할 상처나 균열(손가락 두 마디를 넘는 것)이 다섯 군데 이상이 되지 않으면 새로운 발우로 대처할 수 없습니다. 다만 출가자 본인이 새로운 좋은 발우를 소지하려고 하지도 않았는데, 재가자나 친인척이 새로운 발우를 보시하였을 경우는 쓰던 발우를 상가에 내어놓고 새 발우를 사용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쓰던 오래된 발우라 하더라도 약간의 상처가 있는 것은 수선하여 사용하여야 하는 것이지 아직 사용할 수 있는데도 좀 더 좋은 새로운 발우를 구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탁발이나 청식으로 공양물을 올리고 받을 때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공양물을 올리고 받을 때 해야 하는 5가지는 음식물은 반드시 공양을 올릴 의도로 가져 온 것이라야 하고, 출가자 전방 43-56cm(중지부터 팔꿈치까지의 거리) 내에서 올려야 하고, 중간 힘의 남자가 들어 올릴 수 있는 무게를 넘지 않아야 하고, 재가자는 손이나 쟁반으로 올려야 하고, 출가자는 손이나 발우나 쟁반으로 받아야 합니다.
공양물을 올리고 받을 때 조심하고 피해야 할 6가지는 음식이나 약을 받은 스님이 사용하지 않고 버리는 경우, 공양을 받은 후 환속한 경우, 공양을 받은 후 사용하지도 않고 남에게 주는 경우, 공양물을 남이 힘으로 빼앗거나 친한 사람이 가져 갈 경우, 출가 스님 입적 후 받은 음식이나 약, 출가 스님이 성 전환을 했을 경우에는 올바른 공양이 성립되지 않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전법 유행을 할 경우에는 물을 지니지 않으면 안 되기에 물병(pāniyaṭhālaka)이 사용되었습니다. 물병은 마시는 용도 외에도 손이나 눈을 씻을 때에도 사용합니다.
물병에 물을 받을 때는 벌레가 들어가지 않게 하기위해서 물거름망(parissāvana)이 사용되었습니다. 벌레를 물과 함께 삼켜서 살생하는 것을 막기 위함입니다.

(3) 거주처(rukkhamulasenasana)
초기 부처님의 출가 재자들은 공한처(arañña)나 나무 밑(rukkhamūla), 산 속(pabbata), 동굴(kandara), 계곡(giriguhā), 무덤(susāna), 산림(vanapattha), 노지(ajjhokāsa), 짚더미(palālapuñja) 등에 머무르다가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의 청을 계기로 승원생활을 병행하게 됩니다.
얼마 안가서 기원정사나 죽림정사 등 많은 승원(saṁghārāma)이 건축되게 됩니다. 그래서 평상시는 대부분의 출가자들은 승원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나 혼자서 조용하고 한적한 장소(arañña)에서 거주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다만 비구니는 혼자 아란냐에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비구니 승원은 마을 내에 있었지만, 비구의 승원은 마을이나 마을에서 가까운 조용한 곳에 지었습니다. 그러나 우마차로 갈 수 있고, 우마차가 U턴할 수 있는 곳이 아니면 안 된다고 정해져 있습니다. 승원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출입할 수 있는 것이 원칙이 되어 있습니다. 기독교의 수도원과 같이 세상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산 깊고 골 깊은 곳에서 신선과 같이 사는 은둔자가 존경되는 경향이 있는데, 부처님 시대에도 산 중에서 칩거하여 수행하는 사람(pavivitta 독거 거주자,  paccekabuddha 연각)을 멀리서 경외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을 포함한 출가자 대부분은 집단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용한 장소를 의미하는 아란냐도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장소가 아니라, 승원 옆에 있는 조용한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승원은 처음은 허술한 나무 오두막이었지만, 후에 돌이나 말린 벽돌, 진흙을 석회로 발라 단단한 건물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벽의 색은 흰색이나, 흑색, 혹은 붉게 칠했습니다. 2층으로 건물을 짓기도 했고, 첨탑같이 세워진 곳도 있었습니다. 동굴도 허용되었지만 부처님의 활동 지역인 왕사성 부근을 제외하면 동굴로서 적절한 장소는 없었습니다. 힌두스탄 평야의 중앙부에는 평평한 땅과 얕은 구릉만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큰 승원에는 좌선이나 법회등을 하는 선설당(禪說堂), 스님 개개인이 사용하는 승방, 식당, 부처님을 모신 법당과 같은 전각(重閣, pāsāda), 포살이나 상가회의를 하는 포살당, 창고, 재봉실, 경행처(經行處, caṅkamana) 등의 시설이 있었습니다.
거주처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화장실이 만들어졌습니다.
우물이 있는 곳 가까이에는 수각과 욕실도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욕실은 욕조식의 더운 물을 받아 사용하는 목욕탕 형식이 아니라, 환자들의 병 치료를 위하여 사용하는 사우나 형식의 것이고, 평상시는 바가지로 물을 몸에 끼얻으면서 목욕하는 곳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스님이 사는 승방(kuṭi)은 독방의 경우 최대 길이 12 sugatavidatthiyā(佛搩手, 부처님이 손가락을 펼쳤을 때 엄지 끝에서 장지끝까지의 길이, 부처님의 뼘은 일반인(majjhimapurisa)의 1.33배, 2배, 3배등의 설명이 있다. 예:30✕1.33✕12=4m80cm), 폭 7 sugatavidatthiyā(불걸수, 예:30✕1.33✕7=2m80cm) 정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인도와 파키스탄에 남아 있는 불교 유적의 승방 크기는 4✕2.5m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스님이 사는 큰 방은 있었습니다. 이런 꾸띠를 만드는 기본조건은 정해진 크기를 지켜야 하고, 장로 스님을 모시고 가서 장소를 보아야 하고, 그 곳이 재난이 없는지, 왕래하기가 편한 곳인지를 살펴야 하는 것이고, 만족함을 알아 토굴 조성에 있어 재가신자에게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유행 중에 승원에 숙박할 경우에는 법랍 순서에 따라 방이 나누어집니다. 스님의 수에 비하여 방의 수가 적은 경우는 물론 법랍이 적은 스님들이 같은 방을 쓰게 됩니다. 개인 소유의 승원도 있지만, 원칙적으로 승원 등 고정자산은 지상에 존재하는 스님 모두가 공유하는 재산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방안에는 나무나 대나무, 돌이나 진흙으로 만든 침상(mañca)이나 의자(pīṭha)가 놓입니다. 그러나 높고 크고 아름답고, 목화솜(tūla)으로 만든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침상이나 의자가 높으면 마음이 교만하고 방일해 지기 쉽기에, 이를 경계하여 8 불지(佛指 sugataṅgula, 12불지=1불걸수)보다 높아서는 안 됩니다. 침상이나 의자에 목화솜(tūla)을 넣어서 만들면 부드럽고 푹신한 느낌은 주지만, 재가의 욕망을 누리는 자(gihikāmabhogin) 같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계율에 어긋나기에 피해야 합니다.
매트에 해당하는 와구(sena)나 좌구(āsana), 베개(bimbohana)는 승원의 비품으로 개인의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이런 물건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아직 사용할 수 있는데도 버리고 해마다 새로운 와구를 만들면 안 됩니다. 좌‧와구는 6년 이상 써야만 합니다. 또한 좌‧와구는 상가 대중스님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므로 그곳을 떠날 때 잘 정리하여야 합니다.
방에는 바닥 깔개로 카펫(bhummattharaṇa)이 깔려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카펫(bhummattharaṇa)도구를 풀로 만드는 것은 허용되어 있습니다(tiṇasanthāraka).
좌선용 방석(nisīdana)이나 (침대) 시트(santhata) 등의 천 제품은 각자가 지니는 것입니다. 여러 명이 하나의 좌선용 방석(nisīdana)이나 침대시트(santhata)를 공유하여 사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기에 필요품은 각자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좌선용 방석(nisīdana)은 대체로 세로 90cm×폭 67.5cm의 두 겹으로 만들어진 천인데, 출가자가 바닥에 앉을 때 그 몸을 땅위에 사는 해충 등으로부터 지키고, 가사를 더럽히는 것을 막고, 또한 앉은 장소를 스스로가 더럽히는 것을 막기 위해 무명·모직·아마 등의 천으로 만듭니다.
예경, 좌선, 식사, 설법 등 앉아서 행하는 대부분의 경우에 이 니시다나를 사용하기에 출가자가 필히 가지고 다녀야하는 일상품 중의 하나입니다.
이 니시다나를 이동할 때 소지하는 방법은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세로로 두 번 접어서 우측 어깨에 걸치는 방법, 다른 하나는 역시 세로로 두 번 접어서 좌측 아래팔 위에 걸쳐서 가사로 그것을 가리는 방법입니다.
인도에서는 다만 첫 번째 방법만 행해졌던 것이 후대로 오면서 두 번째의 방법도 통용되게 됩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첫 번째 방법만을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 니시다나를 만들 때는 규정 이상의 크기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길이는 2불걸수(40✕2=80 혹은 45✕2=90cm), 폭은 1과 1/2불걸수(60~68cm), 안쪽 테두리는 1불걸수(40~45cm)입니다.
안쪽으로 테두리가 있는 이유는 쓰고 있던 니시다나를 떼어내어 붙였기 때문입니다.
즉, 새로 니시다나를 만들고자 할 때는 새 천으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쓰고 있던 니시다나 괜찮은 부분에서 1불걸수의 천을 잘라 안쪽 테두리로 하고, 거기에 새 천을 덧대어 만들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새로운 좌구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침대시트(santhata)는 비단으로 만든 것은 사용할 수 없고, 침대시트를 만들게 되면, 검은색 털 1/2, 흰색 털 1/4, 붉으스럼한 갈색 털 1/4로 적절히 혼합하여 만들어야 합니다. 검은색만의 모직으로 된 침대시트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또한 새로운 침대시트는 상가 대중의 특별한 허락을 받지 않았으면 6년 이상 지니고 사용해야 합니다. 마음대로 새로운 침대시트를 구할 수 없습니다.
추운 날 이불로는 자신의 상가띠(重衣)를 사용합니다. 상가띠는 2매를 겹침으로 만들어져 있기에 이불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모기장도 허용되어 있습니다.
방에는 침을 뱉는 용기(kheḷamallaka)가 놓여져 있고, 등불을 두는 선반도 있습니다. 뱀이 떨어져 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서 삿갓모양의 보개(宝蓋)를 달아놓기도 합니다. 방안에는 대나무(cīvaravaṁsa)나 줄(cīvararajju)로 가사걸이를 만들어 가사를 겁니다. 발우는 침대나 의자 아래에 둡니다.

좌와구를 사용할 때는 이와 같이 회상하여야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좌복과 방사에 대해 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다만 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더위로부터 보호하기 위함이요,
파리와 모기, 비바람과 태양열, 여러 곤충들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함이요,
다만 이와 같은 계절의 변화로부터 일어나는 위험을 막아, 한적한 곳에서 수행하기 위해 이 좌복과 방사를 사용하겠습니다.”
이제 사원을 건설한 목적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왕사성의 장자가 비구들을 보고 신심을 일으켜,
「만약 내가 승원(vihāra)을 만들면, 나의 승원에 머물러 주시겠습니까?(vaseyyātha me vihāreru)」라는 요청에 대해,
부처님께서 「비구들이여! 5종의 방사(pañca lenāni)를 허락하노라. 승원(vihāra, 간단한 토굴), 누각(aḍḍhayoga, 반쯤 지어진 옆이 트인 집), 전각(pāsāda, 일반적인 집), 빌라(hammiya, 길고 층계가 있는 여러 층의 대저택), 동굴(guhā)이다」라고 그런 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비구들은 승원이 건설되기 전에는 확실히 아란냐나 나무아래 등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유행」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kālassa eva)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머물던 아란냐에서 나와 왕사성의 마을로 탁발을 다녀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습니다.
왕사성의 장자는 어떠한 이유로 승원을 기부하려고 생각했고, 부처님은 어떠한 이유로 그것을 받게 된 것일까요?
왕사성의 장자는 하루에 60개의 승원을 지어 상가에 보시했다(ekāhan'eva saṭṭhiṁ  vihārepatiṭṭḥāpesi)는 구절에서 드러나듯이, 매일 아침 산 속으로부터 왕사성의 마을로 내려와서 탁발하는 비구들의 모습을 보고 단순하게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의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하여 승원생활을 허락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우루웰라에 머물던 깟사빠 3형제의 일천 명 무리가 부처님을 따라서 왕사성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사리뿟따‧목갈라나를 따라 부처님의 제자가 된 250명이 합쳐져 1250명의 큰 무리가 편안하게 생활하기위해서 비와 이슬을 막을 새로운 거주처를 확보할 필요가 생긴 것일 것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흐름으로 사원이 건설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새롭게 비구가 된 출가자는 10년간 스승의 아래에서 불교 수행자로서 기초적인 것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제 간의 제도가 제정된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스승(upajjhāya, 和尚)으로부터 지도를 받고, 스승을 아버지처럼 존경하며 시중들어야 할 제자를 동주제자(saddhivihārika, 同住)라고 부릅니다. 또한 스승에게 어떤 장애가 생겼을 때 스승을 대신하여 제자를 인도하여 가르침을 주는 의지사(ācariya, 依止師, 阿闍梨) 아래에 있는 제자를 내주제자(antevāsika, antevāsin, 内住)라고 불립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은 더부살이하는 종형제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스승이나 의지사와 기거를 같이 하는 것이기에 그 때문에라도 단 한명이 사는 거주처(paṇṇasālā, 草庵)를 대신하여 보다 큰 시설(vihāra)을 필요로 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주제자(saddhivihārika)는 아침에 아침 일찍 일어나야만 하고, 스승이 얼굴과 입을 씻을 수 있게 약간의 물과 치솔, 치약을 준비해야만 합니다. 스승이 식사를 마치면 발우를 잘 닦아 두어야하고, 좌와구는 물론 방사의 청소도 해야 하며, 스승을 따라 다니며 설법에의 시중, 병들었을 때의 시중 등 올바르게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내주제자(antevāsika)는 동주제자처럼 함께 숙박하지는 않지만 의지사에게 해야 할 의무는 마찬가지입니다. 동주제자나 내주제자는 항상 스승이나 의지사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의무를 행하며, 지극한 믿음을 지니고,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며, 자신이 부족함을 알아, 수행에 매진해야 합니다.  
이렇게 스승이나 의지사와 함께 머물며 배우고 익혀야만 신참 비구들이 예의범절을 지키지 않아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또한 불교를 안정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나, 수행을 올바르게 점검받으며 하기 위해서도 승원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승원의 건설은 단순한 생활의 편의뿐만 아니라 이러한 내적 요인에 의해서 건설되었다고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승원이 건설된 이유는 사제간의 제도 제정과 때를 같이하여 비구계를 받는 제도가 3귀의 수구계로부터 백사 수구계로 바뀌게 되면서, 이것에 의해 상가가 모여 집단의 의사를 결정하고, 또 참회하는 의식을 실행할 수 있는 시설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일반적으로 필요 최소 인원수가 10명 이상으로 정해졌기 때문에 보다 큰 시설이 요구되었을 것입니다. 후대로 내려가면 포살을 실시할 때 큰 지붕이 있는 시설은 필요로 하게 됩니다. 포살은 그 계에 거주하는 모든 비구가 모이지 않으면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아마도 왕사성과 같은 큰 도시에서는 상당한 인원수가 모였을 것입니다. 물론 포살은 지붕이 있는 곳이 아니면 실시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매월 2번 초하루와 보름에 모여 행할 때 비가 오기도 할 것이고 더구나 우기철도 있기 때문에 지붕이 있는 것이 용이할 것입니다.
물론 그 근저에는 부처님 자신이나 제자들의 생활에 유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시기에는 반드시 정주해야 하는 기본적인 생활형태가 없으면 승원도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 백사갈마나 수계의식의 변화, 포살 제도 등도 제정되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상가도 형성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유행이라는 수행·생활형태만을 선택되지 않고, 정주를 중심으로 여긴 것은 그 세계관이나 목표하는 깨달음의 내용과 결합되어 있습니다.
승원이 건립된 것은 죽림정사의 기증이 성도10년이며, 기원정사의 건설이 성도 14년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죽림정사에 60개의 방사가 건설된 것은 성도 10년부터 14년 사이에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죽림원에 건설된 죽림정사에서 사제간의 제도가 제정되어 백사갈마나 참회 의식, 포살이 행해졌다는 기록으로 보면 그것은 성도 12년 혹은 13년에 이미 승원생활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죽림원에 죽림정사라는 승원이 건설되었던 시기에는 벌써 많은 부처님 제자들이 지방에 파견되어 그곳에 머물며 포교 활동에 종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곳에서도 고유한 상가가 형성되어 각 지방에서도 승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고 생각됩니다.
‘saṅgha'라는 말은 saṅ 「모두, 함께, 모이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접두어+√hṛ 「옮기다, 가져오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동사가 합성된 말이기 때문에, 「함께 운영하는 집단」이 원래 의미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 시대에는 「상공업자의 조합」,  「공화제의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말로서 이용되었습니다. 즉 상가라는 말은 2가지 의미를 가지는 말입니다.
① 자연스럽게 형성된 단순한 집단이 아니라, 공통의 목적을 가지는 조직체로서의 집단
② 구성원의 의사가 존중되는 민주적인 집단
이와 같이 「상가」는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운영 규칙이 수반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니 오히려 운영 규칙이 정해져 있는 민주적인 집단을 「상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이런 상가의 운영 규칙을 모은 것을 「경분별(Sutta-vibhanga, 経分別)」이라는 이름으로 율장을 구성하는 2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로 정리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건도(Khandhaka, 健度)라는 이름으로 상가의 제도와 규정을 정리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 「율장」에 규정된 불교의 상가의 가장 엄밀한 정의는 「깜마(羯磨)을 행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비구 혹은 비구니의 집단」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깜마를 행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라는 것은 이 깜마를 실행하는 시점에, 일정한 구역(界, sīmā) 내에 거주하고, 출석할 권한을 가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 깜마라는 것은 상가의 의사를 회의에 의해 결정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 의결 요건도, 의제의 종류에 의한 의결의 방법도 세세하고 규칙으로 정해져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래 「상가」는 뛰어나 조직적인 것이지만, 이 깜마는 통상 하나의 지역에서 집단생활하고 있는 비구 혹은 비구니의 그룹에 의해 행해지기 때문에, 관습적으로 비구·비구니의 「생활 공동체」를 나타낼 때에도 이용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가는 결코 불교의 출가 수행자가 정주하는 집단생활을 시작한 것에 의해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불교를 안정적으로 발전 존속시켜 수행하길 원하는 목적으로 자각적으로 형성된 조직적인 집단이라는 대전제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은 입멸의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유언을 남기는 기분으로 비구들에게 「상가의 7불퇴법이 지켜지는 한은 비구들에게 번영이 기대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7불퇴법이란,
① 비구들이 자주 모이고, 많은 수가 모이는 것.
② 비구들이 화합해서 모이고, 화합해서 상가의 일을 실행하는 것.  
③ 이전에 정해진 적이 없는 것은 정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정해진 계본에 따라서 그대로 행하는 것.
④ 출가한 지 오래되어 경험이 풍부한 상가의 어른들(saṅghapitar), 상가를 이끄는 지도자들(saṅghaparināyaka)을 존경하는 것.
⑤ 비구들이 갈애(渴愛)에 지배되지 않는 것.
⑥ 비구들이 아란냐에 앉아서 알아차리며 수행하는 것.
⑦ 아직 오지 않는 좋은 범행자를 환영하여 올 수 있게 하고, 벌써 와있는 좋은 범행자를 안락하게 머물러 있게 하는 것.
경전에 「상가가 화합하고 있는 것은 즐겁다. 화합하고 있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힘쓰는 것도 즐겁다」라는 게송이나 「부처님과 담마의 가르침에 대하여 신심이 있고(buddhe pasannā dhamme ca), 상가에 대하여 열렬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으면 (saṅghe tibbagāravā) 그들은 천상에 태어나서 거기에서 빛난다.」에서 알 수 있듯이 삼보의 대상인 상가는 화합하여 부지런히 수행하며 살아야 하고, 불교에서 출가자가 되었으면 상가의 울타리(sīmā)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해탈하여 완전한 깨달음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고, 그러한 상가가 존경받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상가의 형성이나 승원의 건설은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깨닫기 위해 확립된 부처님의 세계관과 가치관, 인생관에 근거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4) 의약품(putimuttabhesajja)
putimuttabhesajja는 부패하여 심하게 냄새나는 사람이나 어린 송아지의 소변을 끓이거나 발효시켜 만든 약을 말하는데, 맛이 쓰며 복통 등에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약이라고 번역되는 bhesajja는 식사와 중복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모든 음식을 약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적절한 시간에 약으로서 먹으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유지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식사와 약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비구의 식사에 관한 주요 규정에는,
① 식사는 오전 중에 먹어야 한다.
② 보시된 것이 아니면 먹을 수 없다.
③ 하룻밤이 지난 음식은 다음날 먹을 수 없다.
④ 먹고 싶은 것을 청해서는 안 된다.
⑤ 잔식법(殘食法)에 따라, 󰡐나는 다 먹었습니다. 이것은 남은 음식입니다󰡑라고 (마음속으로) 선언하면 그 날은 오전중이라도 다시 식사를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것이 약으로 쓰일 때는 이런 규정을 받지 않게 됩니다.
빨리어 경장과 율장 속에서 Bhesajja라는 용어가 쓰이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일반적인 약을 나타내는 경우이고, 두 번째는 특정한 증상을 위한 약을 나타내는 경우이고, 세 번째는 약을 보관하는 주머니를 나타내는 경우입니다.
첫 번째의 일반적인 약은 치료를 위해 약을 이용하도록 허용한 것으로 환자의 증상에 적절하고 필수적인 약이나 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수단으로서의 약은 재가자의 보시로 이루어지고 병을 고치기 위해 허용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특정한 증상을 위한 약에는 송아지의 소변을 발효시켜 만든 부란약(pūtimutta bhesajjāna), 병이 생기면 7일간 보관하며 먹을 수 있는 버터연유기름꿀설탕의 5종의 약(pañca bhesajja), 일생 먹을 수 있는 진형수약(盡形壽藥, yāvajīvika)에 포함되는 뿌리로 만든 약(mūla bhesajja)과 떫은 나무즙으로 만든 약(kasāva bhesajja)과 잎으로 만든 약(paṇṇa bhesajja)과 과일 열매로 만든 약(phala bhesajja)과 나무 진액으로 만든 약(jatu bhesajja)과 소금으로 만든 약(loṇa bhesajja), 피부병 등을 위한 바르는 약과 고약, 피부의 가려움을 막아주는 가루약(cuṇṇa bhesajja)이 있고, 더불어 재가자들에게는 아이의 출산을 위한 임신약(bhesajja vijāyeyya), 피임약(bhesajja na vijāyeyya)등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특정한 질환이나 증상에 맞춘 약이기에 사용법이 한정된 약이며, 음식으로 이용할 수는 없습니다. 아플 때 먹는 약으로 한정되어 집니다.
세 번째의 약을 보관하는 주머니(bhesajjatthavika)는 약을 저장할 때 사용되어 집니다.
이와 같이 불교에서는 모든 음식을 약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병이 난 것이 아닐 때는 이러한 약을 사용하여서는 안 됩니다. 아플 때는 꿀, 설탕, 영양제 등을 일주일간 방에 두고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가자가 특별한 마음으로 제공한 약도 받아 쓸 수 있고, 진형수약과 비시약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약의 개념은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서, 버터, 치즈, 벌꿀, 설탕, 고기 등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을 때는 재가 신자가 공양 올리는 것만을 먹는 것이지, 먹고 싶은 것을 청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병이 났을 때는 이러한 것들을 약으로서 청하는 것이 허락되어 있습니다.
병이 치유되면 약(bhesajja)을 반환하여야 합니다. 또한 기일이 넘어서도 병이 호전되지 않으면 일주일을 넘기지 않고 그 오종약을 다시 공양 올리도록 해야 합니다. 비구 사타법 제23조에 <병이 든 비구는 버터연유기름꿀설탕이라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인 5종약(pañca bhesajja)을 7일간만 보관해 두고 복용할 수가 있다. 7일이 지났다면 그 약은 사타죄에 저촉되게 된다.>고 명시하기 때문입니다.
종파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시약은 병의 여부와 관계없이 비시에 마실 수 있는 것으로 8종류의 묽은 주스류입니다. 8종류의 묽은 주스류란 큰 과일로 분류된 9가지 종류의 과일을 제외한 작은 과일로 주스를 만든 것과 삶거나 요리하지 않은 야채로 만든 주스를 말합니다. 즉 설탕물, 야채 주스, 망고 주스, 사과 주스, 오렌지 주스, 레몬 주스, 바나나 주스, 포도 주스 등 작은 열매나 잎, 꽃잎으로 주스를 만든 것이 해당됩니다.
7일약에는 우유, 두유, 붉은 콩 우유, 쌀 우유, 고구마 우유, 믹스 커피, 순수한 초콜릿, 치즈, 아이스크림, 꿀, 설탕, 순수한 우유로 만든 버터, 식물성분의 참기름겨자기름감초기름아주까리기름 종류, 오전에 걸러서 만들어진 동물성분의 생선기름돼지기름 종류, 사탕수수나 야자나무 수액으로 만든 사탕류, 포도당, 시럽, 사이다, 설탕성분이 들어간 드링크류 등이 7일약에 해당합니다.
진형수약에는 강황이나 생강 등 약용식물로 만든 물, 대추 등 약용열매를 우려낸 물, 커피종류, 홍삼 엑기스, 설탕성분이 없는 에너지 드링크류, 박카스, 비타500, 비타민약, 철분약, 칼슘약, 소금, 죽염, 각종 차로 우린 물, 각종 약품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똑같은 것이라도 오전 중에 먹으면 식사가 되고, 병이 들었을 때 먹으면 약이 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병에 걸린 몸을 약으로 치료하는 것보다도, 평소에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시된다고 보는 것입니다.
만약 약을 사용하여야 할 때는 이와 같이 회상하여야 합니다.
“제가 사용하는 의약품과 도구들에 대해 바른 생각으로 관찰합니다.
다만 병듦의 고통스런 느낌으로 일어난 성내는 해로움을 제거하기 위함이니,
병듦에서 오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최상의 자유로움으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이제 외상이나 병으로 인한 신체의 통증을 호소하는 병자에 대한 데라와다의 입장을 간추려 보겠습니다.
치료될 가망이 없는 환자의 경우 요양 생활을 하거나 극심한 통증으로 죽기를 바라기도 할 것입니다. 또한 환자를 간호하는 분도 몸과 마음이 불안정하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환자가 출가 수행자라면 상가의 의무적 행위에 참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가 자발적 안락사나 자살을 택할 수도 있고, 또 간호하는 분들이 환자의 죽음요구에 응하기도 합니다.
빨리어 경전에 위와 같은 행위가 상가 내에서 적지 않게 존재했다는 인연담을 소개하면서 각각의 경우를 율(vinaya)에서 금지했습니다.
다만 중병에 걸리면 상가의 의무를 수행할 수 없기에 환자에 의한 율의 위반행위는 면책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환자를 배려하는 것은 현대에서도 공통되는 윤리적 요청이기도 합니다.
먼저 격심한 통증을 수반하는 중병의 극복 예를 보겠습니다.
장부 경전 대반열반경(Mahā Parinibbāna Suttanta)에 의하면 우안거에 들어가신 부처님께서 중병에 들어 죽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알아차림과 현상에 대한 지속적인 앎(sati-sampajañña)으로 그 중병을 극복하셨습니다.
또한 상응부 경전에 의하면 중병에 빠진 마하깟사빠(Mahakassapa) 존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칠각지(sattabojjhaṅgā, 七覺支)를 잘 수행하여 병을 극복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병에서 죽을 정도의 통증이 있더라도 정진 수행력이나 칠각지 등의 수행적 행위에 의해 통증과 병이 극복되는 것이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교 수행자에게 있어서 통증 극복을 위한 기본적인 대응방안이라는 메시지를 이 경전들은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 다른 상응부 경전에서는 격렬한 통증을 참기 힘들어 자살하려는 찬나(Channa) 비구를 문병한 사리뿟다(Sāriputta)존자는 「자살하려고 칼을 손에 들지 마라. 음식이나 약은 내가 구하여 주마. 간호할 사람이 없으면 내가 간호하마. 제발 살려고 노력해라.」라고 말합니다.
또 도적들에 의해 신체가 떨어져나가는 중상을 입어 괴로워하고 있는 재가자에게 비구가 자살을 권하자, 「중생에게 자비를 실천해야 할 비구가 자살을 권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자살을 권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차이가 없지 않은가!」라고 재가자들은 비구를 비난했다고 합니다.
여기에서는 아무리 괴롭더라도 자살은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입장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로부터 율장이나 경장에 나타나는 중환자에 대한 간호의 기본 원리를 보면,
① 수행에 의한 중병의 극복이 우선이다.
고통을 참고 정진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입니다.
② 환자를 문병하고 살아갈 용기를 가지게 격려한다.
③ 간병(upaṭṭhāna)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위이며 의무이다.
환자가 있는데 간호하지 않는 사람은 돌길라(thullaccya)죄, 죽음 방조죄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환자 간호는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고, 불법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④ 간병하지 않아 죽도록 내버려두는 것은 중죄이다
결과도 고려되어야겠지만 동기가 중시되는 것은 불교 윤리의 특징입니다.
살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해야 할 도리도 하지 않아 환자가 죽음에 이르도록 하면 안 됩니다. 율장은 여러 가지 자살 방조나 청탁 살인을 금지하고 있고, 자살을 권하거나 자살의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강하게 금지하고 있습니다.
⑤ 생명이 있는 한 간호해야 한다.
「생명 있는 한(yāvajīvaṁ) 간호해야 하고, 나을 때까지 간호하며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라고 율장은 말합니다(Vin.Ⅰ. 25, 24)
근래에 「죽을 권리」의 주장이나 「자발적 안락사」의 합법화, 「명예사」 등의 움직임이 있지만, 모두 생명을 가치 평가하는 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죽을 때까지 돌보는 것이 원칙이기에 생명의 가치를 평가해서 안락사를 권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율장에 응축된 불살생, 자비의 사상은 현대의 「죽을 권리」를 용인하는 서구 사상과 상반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중병인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지극정성으로 간호하고(yāvajīvaṁ upaṭṭhātabbo), 나을 때를 기다리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들어맞는 행위라고 율장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등명Padipeyyo () 2020-11-13 02:14:31 |  
원본에는 가사의 형태 그림이 있는데, 이곳에는 올려지지 않아 빠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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