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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라와다 불교의범 및 신행생활] 6
글쓴이 : 등명Padipeyyo ()  2020-11-13 01:27:27, 조회 : 29, 추천 : 3


6. 오계(Pañca sīla)
『재가 불자의 기본적인 계』

먼저 계와 율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율(Vinaya)은 「반대 방향으로 이끈다」라는 의미입니다.
(vi 「반대 방향으로」+nayati 「이끄는, 인도한다」).
율은 세상의 일반적인 삶의 방법을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세상에서는 「욕구나 분노도 때론 필요하다. 욕구가 있어야만 성공하고, 분노는 나쁜 놈이나 상대를 넘어 서기 위해서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익을 위해서 약간의 거짓말은 괜찮고, 라이벌과 경쟁해야만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율은 그 정반대의 길인, 욕구나 분노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길입니다.반면 계(Sīla)는 율(vinaya)을 실천하기 위한 항목입니다.
율(vinaya)을 항목으로서 받으면 계(sīla)가 됩니다. 계(sīla)는 마음이 번뇌로 더러워지지 않기 위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계는 실천하다, 봉사하다, 실행하다라는 의미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습관성, 경향성, 생활 등의 의미를 가져, 「좋은 습관성, 좋은 행위, 도덕적 행위」등의 의미에 이용됩니다.
그래서 계(sīla)는 자발적인 선한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기에 위반해도 벌칙이 없지만 행해야할 준수사항(caritta)입니다. 하지만 율(vinaya)은 위반했을 때는 벌칙이 가해지기에 삼가야 할 금지사항(varitta)입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지 않는 것」,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라는 것은 계(sīla)이고, 거짓말하지 않는 것, 오후에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 따라 자신을 도덕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율(vinaya)입니다.
그래서 오계(pañcasīla), 팔계(dasasīla) 등에는 계(sīla)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지만, 출가자는 율(vinaya)에 의해 계목을 지키고, 율(vinaya)에 바탕을 둔 규칙에 의해 교단을 운영하는 것이기에 개개의 출가자는 보름마다 포살을 해야 하고, 우기에는 안거를 해야 하고, 규범에 따라 적당하게 식사를 해야 하고, 규정에 맞게 가사를 수하여야만 합니다.
그래서 「pāṭimokkha(계목, 해탈하기 위해 올바르게 지키는 것)에 의한 방호(saṁvara)」를 하면 「안락의 경험」을 얻고, 그렇지 못하면 벌칙을 통한 참회를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계(sīla)는 율(vinaya)의 항목이지만, 아무리 상황에 따라 항목을 달리해도 인간의 삶의 방법을 모두 항목으로 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항목은 개인차나 시대에 의해서도 좌우됩니다. 그래서 계(sīla)는 상대적으로 세세한 항목은 시대나 장소, 개인차등의 여러 조건에 의해 바뀔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율(vinaya)은 변경할 수 없습니다. 율(vinaya)은 시대나 장소를 넘은 보편적인 것입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사람은 「어떤 행위에 의해 마음이 더러워질까」라는 지혜가 있으므로 항목에 의지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인 사람은 자신의 번뇌에 따라 판단해 버리거나, 다양한 핑계에 의해서나, 자신의 좋고 싫음에 따라 율을 바꾸어 버릴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래서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율의 항목은 결코 바꾸어서는 안 된다」라고 결정하고 있습니다.
계율은 사람을 구속하고 불편하게 한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입니다. 도덕적인 삶의 방법이 사람을 자유롭게 합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곤란하지 않고 침착하게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도덕을 지키고 있으면 아무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마음의 소리에 따라 행하라」고 말하며, 그런 것이 그야말로 자유롭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자신의 마음에 「사실은 무엇을 하고 싶은가」라고 정직하게 물어보십시오. 통제되지 않은 마음은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것 밖에 생각하지 않습니다.
욕심 부리고 싶고, 술 마시고 싶고, 험담하고 싶고, 게으름 피우고 싶은 등 마음대로 사는 것이야말로 부자유스럽게 되는 길입니다. 자유롭게 되고 싶다면 마음의 소리에 거역해 살아야 합니다.
도덕적 규율이라는 의미의 빨리어,「실라(계)」에는 3개의 단계가 있습니다.
① 내면적인 덕, 즉 상냥함, 만족을 아는 것, 순수, 성실,
   인내력 등의 특징을 갖추고 있는 것
② 내면적인 덕을 밖으로 향해 나타내는 몸과 말에 의한
   덕이 있는 행위
③ 도덕적 이상과 일치하도록 몸과 말에 의한 행동을 제어하는
   행위 규칙

3개의 단계는 서로 서로 관련되어 있어 반드시 별개의 단계로서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구별한다면 각각의 계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이루고 있습니다.
① 「내면적인 덕」으로서의 계는 도덕적 규율을 지키는 훈련이
  목표로 해야 할 「목표」
② 「몸과 말에 의한 청정한 행위」로서의 계는 「내면적인 덕」
  이라고 하는 목표를 밖으로 향해 「명시하는 것」
③ 「행위 규칙」으로서의 계는 「내면적인 덕」이라고 하는 목표를
  실현하는 체계적 「방법」

그래서 「내면적인 덕」으로서의 계는 「몸과 말에 의한 행위」를 도덕적 이상과 일치시키는 것에 의해 유지됩니다. 게다가 「몸과 말에 의한 행위」라는 도덕적 이상과의 일치는 그러한 이상을 구체화하기 위한 「행위 규칙」에 따르는 것에 의해 실현됩니다.
경전에서 계에는 몸과 말에 의한 행위가 조화를 가져오는 특징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는 우리의 다양한 행위로 우리 자신의 진정한 이익과 다른 사람의 행복을 가져오고, 보편적인 도덕과 일치시켜서 그러한 행위로 조화를 가져옵니다. 계에 반하는 행위는 죄악감, 불안, 후회 등을 특징으로 하는 자기 분열 상태를 일으키게 합니다. 그러나 계를 지키는 것으로 이러한 분열은 치유되어 우리의 내면의 기능은 균형 잡힌 통일 있는 상태로 이끕니다.
계는 인간관계에도 조화를 가져옵니다. 도덕적 원칙을 무시하면 경쟁, 착취, 공격 등에 의해 인간관계가 손상되지만, 계의 원칙을 구체화하려고 하는 행동은 평화, 협력, 상호 존중 등 사람과 사람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낳습니다.
계를 지키는 것으로 얻을 수 있는 조화는 사회적인 것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감각을 가지는 존재의 세계 전체를 지배하는 「업의 법칙」, 즉 행위가 있으면 결과가 생긴다고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고차원의 법칙과도 부합하기에 우리의 행동은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길을 걸으려면 그 기초로서 계를 몸에 익힐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침에서 보여 주신 가장 기본적인 계가 「오계」입니다.
재가자에게 일반적으로 추천하고 있는 계는 단 5가지입니다. 이 5가지는 부처님께서 사람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지켜야 할 도덕적 행위를 지혜의 눈으로 보고 나타낸 것입니다. 계는 반드시 스스로 자율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스스로 분명하게 마음으로 결정해서,
1. 나는 살생을 하지 않겠습니다.
2. 훔치지 않겠습니다.
3. 성적인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겠습니다.
4. 거짓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5. 술·마약 등을 취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스스로 지키며 살아보십시오. 그 정도만으로도 상당히 자유롭고, 마음 편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계를 지켜 올바른 생활을 하고 있으면 주위로부터도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신뢰받게 됩니다.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러한 5가지의 계율을 기본으로 해서, 하나씩 항목을 늘려나가며, 자신의 마음의 약점을 관찰하고, 경고하도록 노력하면 좋습니다. 예를 들어 먹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은 식탐을 경고해 지키고,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잡담을 조심하는 등, 자신에게 맞은 계를 오계에 덧붙여 지켜 나가면 번뇌가 적게 일어나게 됩니다.
계는 몸과 말의 행위에서 실수를 일으키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마음은 위빳사나와 자애 명상 등의 수행에 의해 맑고 깨끗하게 해 나갑니다.
지혜가 생기기 위해서는 욕구에 휩싸인 생활을 경고해 번뇌를 약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수행에서는 계를 지키는 것을 빠뜨릴 수 없습니다. 수행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계를 지키려는 마음이 일어나고, 계를 지키고 있으면 수행도 확실히 잘 진행되어 상호 상승관계가 형성되게 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도 살아가면서 마음의 성장이든 퇴보이든 반드시 어느 쪽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계는 마음이 더러워지지 않기 위한 행동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계율만큼 사람에게 친절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먼저 기본이 되는 오계는 불교 입문의 첫 관문이며, 오랫동안 재가 불교도의 지표로 여겨져 왔습니다. 담마빠다(법구경)에 오계에 관한 표현이 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고, 거짓을 말하고, 세상에서 주어지지 않은     것을 취하고, 다른 사람의 아내를 범하고, 곡물주·과실주에 탐닉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뿌리를 파헤쳐서 무너뜨리는 사람이다<246, 247게송>.」

또한 숫따니빠따(결집)의 담미까경에서도 오계나 팔계의 원초적인 형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394) 산 것을 (스스로) 죽이거나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 된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죽이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 세상의
  식물이건 동물이건 폭력을 두려워하는 모든 존재에 대해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395)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은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또 어디에 있든지, 그것을 취하지 말라. ···(생략)
 (396) 지혜로운 자는 음행을 삼가하라. ···(생략)
 (397) 모이는 장소에 있든, 무리가운데 있든, 어떤 사람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된다. ···(생략)
 (398) 또한 술을 마시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생략)」

경전에 따라 그 순서가 일정하지 않는 것은 아직 계나 율의 이념이 확립하기 이전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계는 언제쯤 어떻게 정착한 것일까요? 자이나교 등의 비교를 통하여 보면, 자연 발생적으로 형성되어 간 불교 교단의 통일과 목적의식의 확인을 위한 방법으로서 결의의 고백이나 확인, 일상 행위의 반성을 위한 의식인 포살의 원형이 먼저 정해져 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것은 이윽고 출가자의 여러 가지 수계나 참회의 의식으로 정형화 되어 가면서 자연발생적으로 재가자를 위한 간소한 오계가 정해져 그것이 확정되어 나갔을 것입니다. 즉, 교단의 급격한 팽창에 따라 출가자 계율의 항목 정비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거기에 상응하여 오계는 상대적으로 재가자의 기본적인 계로서 정착해 갔을 것입니다.
Pañca sīla(빤-짜 실-라)란 오계를 말하는데, 불교도의 기본적인 계입니다. 이것을 왜 기본적인 계라고 말하는가 하면, 먼저 삼보에 귀의하는 삼귀의 삼창을 한 후에는 이 오계를 받는 것으로 실질적인 불교도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사찰에 정기적으로 보시를 한다든지 혹은 어떤 종교단체의 회원이 되었다고 해도 불교도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를 이해한 다음」스스로 삼보에 귀의하여, 삼귀의문을 세 번 독송하고 오계를 받았다면 그 사람은 불교도입니다.
오계는 불교도이면 모름지기 받아 지녀서 항상 지켜야 할 것이기에 오계를 상계(Nicca sīla, 常戒)라고 말하기도 하고, 존중하고 공경하며 주의 깊게 지켜야 할 것이기에 경법계(Garudhamma sīla, 敬法戒)라고도 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오계는 재가 불교도로서의 근본적 행동 지침이며 덕목입니다. 누군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 가르침의 고귀한 가치를 안다면 존경하는 스님께 나아가 삼귀의와 오계를 받으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러한 스님과의 인연이 없다면 불상이나 불탑 앞에서 스스로 삼귀의를 삼창하고 스스로 오계를 받으면 좋을 것입니다. 물론 스님으로부터 직접 받고 그리고 설법을 듣고, 질문이 있으면 묻는 것이 가장 좋지만, 오계를 반드시 스님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계는 그것을 어떻게 받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 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해 나가느냐하는 것이 요점입니다.
이 사바세계를 살면서 단 5가지의 계를 지키는 것도 의외로 어려운 것입니다. 자신은 지키고 싶어도 지킬 수 없을 때도 있고, 본의 아니게 잘못을 범해 버릴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인정한 다음, 계를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계를 지키느냐 아니냐는 단적으로 말하면 노력하는 사람과 노력하지 않는 사람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노력이 올바르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없는 것이지만, 이 오계는 지키려고 노력한 만큼의 좋은 결과를 그 사람이 가져가는 것입니다. 뜻밖에 얻어지는 요행이란 없습니다.
사람은 좋게도 나쁘게도 바뀔 수 있는 것입니다. 시시각각 변화해서 머물러 있는 것은 없습니다. 자신을 돌아보았을 때 어떻게 바뀌어 왔습니까? 흐름을 바꾸는 것은 대단한 의지와 실천이 없으면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만들어 낸 업의 폭풍에 등 떠밀려 혼탁한 흐름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청정수에 몸을 담그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흐름은 갑자기 간단하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거기에 저항할 수는 있습니다. 「자신을 바꾸자」 「행복하게 되고 싶다」고 강하게 바란다면, 그 폭풍에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비록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악한 일을 많이 했다고 해도 좋은 방향으로 좋게 바뀌는 것은 가능합니다.
계를 받아 그것을 지키려고 날마다 노력하고 힘쓰는 첫 관문이 오계입니다. 그처럼 사는 사람이 불교도입니다.
오계를 받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① 계를 받기 전에 우선 지금까지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참회를 청하는 문장을 독송하도록 하십시오.
물론 스스로의 죄를 스님에게 고백했다고 해서, 스님이 그 죄를 「속죄한다」든지 「맑게 한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계사가 되는 스님 앞에서 삼배 드리고 엎드려서, 「 제가 여러 가지 잘못을 범했습니다. (삼귀의와 오계를 받기 전에) 그 잘못들을 참회하니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참회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계사 스님도 참회를 구하는 게송을 독송합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죄의 참회를 통해 청정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대중]
Ⓐ-⓵ Mahāthere(혹은: Ācariye, There, Āyasmante)
      pamādena dvārattayena kataṁ    
      sabbaṁ aparādhaṁ khamathu no(혼자일 때: khamatha me)
      bhante.
마하-테-레-(혹은: 아-짜리예-, 테-레-, 아-야스만-떼-)
빠마-데-나 드와-랏-따예-나 까땅-
삽-방- 아빠라-당- 카마투 노-(혼자일 때: 카마타 메-) 반-떼-.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제가) 다른 이들에게
조심성 없이 마음과 말과 몸으로 행한 모든 나쁜 일들을
참회합니다.

[스님]
Ⓐ-⓶ Ahaṁ khamāmi, tumhehipi(혼자일 때: tayāpi) me
       khamitabbaṁ.
   아항- 카마-미, 뚬-헤-히삐(혼자일 때: 따야-삐) 메-
   카미땁-방-.
   스님은 여러분(당신)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당신)도 스님의 잘못을 용서하십시오.

[대중]
Ⓐ-⓷ Khamāma(혼자일 때: Khamāmi) bhante.
  카마-마(혼자일 때: 카마-미) 반-떼-.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저)도 스님의 잘못을 용서합니다.                                      
이것은 다만 입으로 독송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 문장대로 자신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강제적이 아니라 자주적으로 그처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참회 게송은 오랜만에 사찰에 가거나, 스님을 특별한 때 뵙게 될 때 사용합니다. 자주 사찰에 가서 예불도 하고, 불재일도 지키고, 수행도 하고 할 때는 보통 이 참회 게송을 생략합니다.

② 계는 자발적으로 청해야만 합니다.
버마에서는 계를 청할 때 먼저 「Okāsa(오-까-사)」를 3번 독송합니다. 오까사란 허가라는 의미로 「허가를 청합니다!」라고 번역하면 되겠지만, 굳이 번역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이렇게 오까사라고 허가를 구하고 나서, 다시 오계를 청하는 이중으로 허가를 구하고 있습니다.
태국은 「Okāsa(오-까-사)」라고 독송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계사 스님에게 삼귀의와 오계를 내려주라는 허가를 바로 청합니다. 스리랑카는 종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이런 것을 청계(請戒)라고 말합니다.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일반적인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대중]
Ⓑ Mayaṁ(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yācāmi).
Dutiyampi mayaṁ(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yācāmi).
Tatiyampi mayaṁ(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yācāmi).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혼자일 때: 야-짜-미).
두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혼자일 때: 야-짜-미).
따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혼자일 때: 야-짜-미).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세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설하여 주십시오.

[스님]
Ⓒ Yaṁ ahaṁ vadāmi taṁ vadetha.
양- 아항- 와다-미 땅- 와데-타.
저의 말을 따라서 하십시오.

[대중]
Ⓓ Āma bhante.  아-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그리고 다른 방법으로 아래와 같이 할 수도 있습니다.
Okāsa Okāsa Okāsa,
mayaṁ(ahaṁ) bhante tisaraṇena saha pañcasīlaṁ dhammaṁ yācāma(yācāmi), anuggahaṁ katvā sīlaṁ detha me bhante.
오-까-사  오-까-사  오-까-사,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실-랑 담망- 야-짜-마(혼자일 때: 야-짜-미), 아눅-가항- 까뜨와- 실-랑- 데-타 메- 반-떼-.
두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따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오까사(허가를 청합니다)!  오까사!  오까사!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에게(저에게) 삼귀의와 함께 오계를 설하여 주기를 청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존경하는 스님! 자비를 베푸시어 계를 설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세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또는 아래와 같이 할 수도 있습니다.
mayaṁ(ahaṁ) bhante visuṁ visuṁ rakkhaṇatthāya tisaraṇena saha pañca sīlāni  yācāma(yācāmi).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위숭- 위숭- 락-카낫-타-야 띠사라네-나 사하 빤-짜 실-라-니 야-짜-마(혼자일 때: 야-짜-미).
두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따띠얌-삐 마양-(혼자일 때: 아항-) 반-떼-.......
존경하는 스님! 저희들이(혼자일 때: 제가) 삼귀의와 5계를 청하오니 하나씩 하나씩 순서대로 설하여 주십시오.
두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세 번째도 존경하는 스님,....

③ 스님의 선창 따라서 귀의 게송과 삼귀의 삼창을 복창합니다.
Ⓔ Namo tassa, Bhagavato, Arahato, Sammāsambuddhassa.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삼-붓-닷-사.」(3번)

Ⓕ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붓-당- 사라낭- 갓-차-미.」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담-망- 사라낭- 갓-차-미.」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상-강-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Du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두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budd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붓-당-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dhamm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담-망- 사라낭- 갓-차-미.」
   Tatiyampi saṅghaṁ saraṇaṁ gacchāmi.
  「따띠얌-삐 상-강- 사라낭- 갓-차-미.」

[스님]
Ⓖ Tisaraṇagamaṇaṁ niṭṭhitaṁ
   띠사라나가마낭- 닛-티땅-.
   이것이 세 가지 의지할 대상입니다.

[대중]
Ⓗ Āma bhante.
   아-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는 스님 혼자 독송하는 게송인데,
스리랑카에서는 Tisaraṇagamaṇaṁ sampuṇṇaṁ(띠사라나가마낭- 삼-뿐-낭-.
세 가지 의지할 대상이 충족되었습니다.)이라고 독송하며,
버마에서는 Tisaraṇagamaṇaṁ paripuṇṇaṁ(띠사라나가마낭- 빠리뿐-낭-.
세 가지 의지할 대상이 완성되었습니다.)이라고 독송하기도 합니다.

④ 스님의 선창 따라서 오계를 복창합니다.
Ⓘ Pāṇātipāt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빠-나-띠빠-따-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Adinnād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아딘-나-다-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주지 않는 물건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Kāmesu micchācār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까-메-수 밋-차-짜-라-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잘못된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Musāvād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무사-와-다-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Surāmeraya majja pamādaṭṭhānā veramaṇī sikkhāpadaṁ samādiyāmi.
수라-메-라야 맛-자 빠마-닷-타-나- 웨-라마니- 식-카-빠당- 사마-디야-미.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

[대중]
Ⓙ Imāni pañca sikkhāpadāni samādiyāmi.
이마-니 빤짜 식카-빠다-니 사마-디야-미. (3번)
이와 같은 5계를 잘 지키겠습니다.

[스님]
Ⓚ Sīlena sugatiṁ yanti, Sīlena bhogasampadā,
Sīlena nibbutiṁ yanti, Tasmā sīlaṁ visodhaye.
실-레-나 수가띵 얀띠, 실-레-나 보-가삼빠다-,
실-레-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실-랑 위소-다예-.
이와 같은 계를 잘 지킴으로써 행복해지고,
이와 같은 계를 잘 지킴으로써 부유해지며,
이와 같은 계를 잘 지킴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니,
이와 같은 계를 청정히 지켜야 합니다.

[대중]
Ⓛ Āma bhante.  아-마 반떼-.  잘 알겠습니다, 스님.

Ⓙ, Ⓚ는 합하여서 아래의 3가지 방법으로 스님 혼자 독송하기도 합니다.
Tisaraṇena saha pañcasīlaṁ dhammaṁ sādhukaṁ katvā appamādena sampādetha.(띠사라네-나 사하 빤짜실-랑- 담-망- 사-두깡- 까뜨와- 압-빠마-데-나 삼-빠-데-타. 삼귀의와 함께 오계의 법을 바르게 행하여, 응당 방일하지 않고 목적을 완수하십시오.)

혹은 Tisaraṇena saha pañcasīlaṁ dhammaṁ sādhukaṁ surakkhitaṁ katvā appamādena sampādetha.(띠사라네-나 사하 빤짜실-랑- 담-망- 사-두깡- 수락-키땅- 까뜨와- 압-빠마-데-나 삼-빠-데-타. 삼귀의와 함께 오계의 법을 바르게 행하여 잘 수호하며, 응당 방일하지 않고 목적을 완수하십시오.)

혹은 Imāni pañca sikkhāpadāni, Sīlena sugatiṁ yanti, Sīlena bhogasampadā, Sīlena nibbutiṁ yanti, Tasmā sīlaṁ visodhaye.(이마-니 빤짜 식카-빠다-니, 실-레-나 수가띵 얀띠, 실-레-나 보-가삼빠다-, 실-레-나 닙부띵 얀띠, 따스마- 실-랑 위소-다예-. 이와 같은 오계를 잘 받아 지키는 것으로 인하여, 이와 같은 계로 인해 행복해지고, 이와 같은 계로 인해 부유해지며, 이와 같은 계로 인해 깨달음을 성취하게 되니, 그러므로 이와 같은 계를 응당 청정히 지켜야만 합니다.)

이렇게 살펴본 것처럼 스님으로부터 받는 경우는 위에 적은대로 하면 되지만, 스스로 오계를 받는 경우에 혹은 자기의 계행이 의심스러워 홀가분하지 않은 것을 끊어내야겠다고 생각해서 다시 받고자할 때는 불상 앞에서 삼배 드린 후 Ⓐ-⓶, Ⓐ-⓷, Ⓒ, Ⓓ, Ⓖ, Ⓗ, Ⓙ, Ⓚ, Ⓛ은 생략하고 나머지를 독송합니다.
그런데 오계는 한 번 받았기 때문에 일평생 받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아닙니다. 불재일이나 법회가 있을 때 마다 받아서, 마음에 그 계의 뜻을 염송하면서 받아 지니어, 날마다 유지하도록 노력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만 독송할 뿐이라면, 단순한 「공염불」이 되어 실천하여야 할 의미가 없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버마나 태국의 재가자들은 조석으로 집의 불단 앞에서 스스로 삼귀의와 오계를 독송하고 나서, 그리고 적당한 경전을 읽습니다. 또한 어느 때 사원으로 향해 가거나, 친족의 기일 등으로 스님을 집으로 공양청하여 불렀을 때에도 스님으로부터 삼귀의와 오계를 받아 독송하고 나서, 그리고 설법을 듣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보살계라는 이름으로 계명을 받는 경우를 종종 봅니다. 불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이름」은 갖고 싶기에 동참금을 내고 수계를 받는 일들이 있습니다. 또는 장례식 등에서 고인에게 수계를 하는 의례를 행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수계명인 법명을 받기도 하고, 또는 스스로 계명을 짓는 일도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정말로 본말이 전도된 행위입니다. 이것은 수계를 받는 본래의 의미인 선한 마음을 증장시켜주지 못하고, 악한 일을 방어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계는 「인가」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번 수계 받았다고 해서 평생 수계 받지 않아도 불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수계 받은 것으로 좋은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계는 스스로의 의지처가 되어서 그 의미를 잘 이해해서 받도록 해야 하며, 그리고 그 계를 지키도록 부단히 노력할 때야만 수계의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행이 단정치 못하면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고, 거듭거듭 계를 되새겨서 10가지 좋지 않은 행위(악행)를 절제하도록 해야 하고, 선한 행동만을 하며, 출가자들을 존경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재가자에게 오계는 알몸으로 외출하지 않고 옷을 입고 외출하듯이 항상 지켜야 할 것입니다.
재가자의 계는 마음의 향상으로 이끕니다.

담마빠다 주석서에 이러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계율을 지키며 수행에 힘쓰던 다섯 명의 재가자가 있었습니다. 이 다섯 명은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하나의 항목씩 계율을 선택해 지키기로 했습니다. 한 사람은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고 하는(pāṇātipātā veramanī) 불살생계를, 또 한 사람은 주어지지 않은 것을 훔치지 않는다고 하는(adinnādānā veramanī) 불투도계를, 3번째의 사람은 불륜을 경고하는(kāmesu micchācārā veramanī) 불사음계를, 다음의 사람은 거짓말을 하여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고 하는 (musāvādā veramanī) 불망어계를, 다섯 번째의 사람은 지혜의 개발에 방해가 되는 술이나 마약 등을 섭취하지 않는다고 하는(surāmerayā majjapamādaṭṭhānā veramanī) 불음주계를 지키기로 했습니다. 스스로 결정한 계를 모두 진지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기원정사에 이 다섯 명이 모였습니다. 수행에 대해 이야기와 자신이 지키고 있는 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다들 자신이 선택한 계가 정말로 지키기 어렵고, 다른 사람이 선택한 계는 지키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마음으로 인해 당연히 친구끼리 대립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오계 중에서 어떤 계가 지키기 어렵고, 어떤 계가 수승한가?」알고 싶어서 부처님께 여쭙습니다.
부처님의 대답은 오계 중에서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계율도 일단 지키려고 하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기에, 모든 계를 완전하고 청정하게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모든 계를 청정하게 지키라고 하셨을까요?
첫 번째, 만약 우리에게 하나의 계만 자유롭게 선택해서 지키도록 하면 어떻게 될까요? 대답은 명백합니다. 제일 지키기 쉬운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이 드신 분들은 「불사음계」라고 할 것이고, 도시의 고층 아파트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불살생계」라고 할 것이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불음주계」를 선택할 것입니다.
평상시는 잘 범하지 않는 악행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해도, 그 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도 필요 없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의 더러움과 싸우지 못하고 끝납니다. 그것은 소가 「나는 채식만 하겠다!」라고 결정한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 결정한 소는 어떤 노력도 필요없이 먹이를 찾아 마음껏 먹어버리면 됩니다.
두 번째, 좀 더 나은 향상을 위해서 지키기 어려운 하나의 계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결정하면 그 계를 지키게 됩니까? 평상시는 지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유혹이 있으면 「이번만, 딱 한번만」이라고 생각해서 찢어 버립니다. 예를 들어 평상시 불륜을 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라도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 그 쪽의 적극적인 행위에 져버리면 바람을 피게 됩니다. 평화주의자도 자신의 나라가 침략당하면 군에 입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서 「계율을 지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라고 합니다. 조건이 좋기만 하다면 계를 지키는 것을 지계라고 하지 않습니다. 죄를 범할 조건이 없는 경우는 누구라도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사자나 호랑이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사냥감을 잡지 않습니다.
계를 지킬 수 없는 사람은 여러 가지 변명을 합니다. 『지금의 시대에는 지킬 수 없다. 유혹이 많은 환경에 있기 때문에 지킬 수 없다. 동료가 하고 있는 것을 나도 같이 하지 않으면 한 사람의 사회인이 될 수 없다. 남을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대인관계를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기에 용납해야한다. 계율을 지키면 이 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다. 계율은 시대에 뒤떨어진 방법이다.』이런 변명을 합니다.
이러한 변명의 구조는 이렇게 됩니다. 『사회에서는 이것이 올바르다. 현자에 의해 칭송되는 삶의 방법이 아니라, 사회에서 정해놓는 삶의 방법에 자신을 조정해야 한다. 현자에게 비난 되어도 사회에서 인정받으면 된다.』 이런 사고인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는 개인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사회는 잔혹합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은 개인을 무시합니다. 그 개인이 어떤 문제를 일으키면 극단적으로 비난합니다. 친족조차도 그 개인이 평화롭게 살도록 두질 않습니다. 또 사회는 현자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무지한 다수파가 결정한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됩니다.
결국은 사회 상식에 맞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어리석은 이에게 맡긴다고 하는 것이 됩니다. 사회 상식·가치관은 항상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은 도덕에 근거해 일어나는 변화가 아닙니다. 옛날에는 나쁘다고 생각하던 것도 시간이 지나면 결코 나쁘지 않은 당연한 상식이 됩니다. 사회는 도덕 윤리를 부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은 유혹에 약하다. 자신이 없다. 정신적으로 약하다. 그래서 계는 지킬 수 없다.』 이런 변명도 있습니다. 이 경우는 사회의 탓이 아니라, 자신의 자질을 변명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변명의 구조는 자질을 향상할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약한 채로 살아도 좋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는 대담한 도전인 것입니다. 어리석음에 지배되고 있는 사회에 좌지우지되지 않는다고 하는 도전입니다. 자신의 허약한 자질에 대한 도전입니다. 심약한 사람은 계를 지킬 수 없지만, 심약한 사람이야말로 계를 지키기 위해서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신적으로 뛰어난 인격자는 더욱 더 발전하게 하는 계기가 됩니다. 「계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란 붓다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변명도 되지 않는 것입니다.
세 번째, 적은 수지만 나름대로의 계를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분들은 스스로 계를 결정해서 그것에 따라 생활합니다. 특별한 종교적인 영향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행위를 중단하는 것을 계로 합니다. 「채식주의」, 「자급자족」, 「자연 속에서 사는 것」, 「텔레비젼이나 라디오를 시청하지 않는 것」, 「단식」, 「해마다 여행을 떠남」등이 있습니다.
사회로부터 보면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든지 우리와 다른 훌륭한 삶을 살고 있다」라고 칭찬할 수 있는 행위입니다. 이 계를 관찰해보면 그것은 계라는 것보다 모습이나 행동을 중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모양을 유지하면 마음도 성장한다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행동이나 모습을 지켜나간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고 성장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성공할 가능성도, 성공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완전한 채식주의자의 마음이 반드시 사랑으로 흘러넘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에 대해서 분노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고, 그들을 무시하는 차별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마음은 향상하지 않습니다.
단식을 행하는 분이라도 음식에 대한 집착이 반드시 줄어든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반대로 식욕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세하게 분석해서 하나씩 조사하지 않는 이상 이러한 계를 지키는 것이 옳다고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네 번째, 그럼 부처님에 의해 설해진 계는 어떠한 것입니까? 부처님이 가르치신 계는 사회를 기준으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리고 사회의 보편적인 도덕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설하신 계는 사회에 대해 대립하지 않고, 평화롭게 살 수 있으며, 마음의 더러움이 떨어져나가 향상으로 나아갑니다.
재가자의 계는 기본적으로 5가지입니다. 그러나 간단한 이 다섯 가지를 지키는 것이 쉽지는 않습니다. 자기 자신에게 도전하지 않는 한 지킬 수 없습니다. 지키는 사람은 누구든지 마음이 향상되고, 행복하게 되는 것은 확실합니다. 부처님이 완전한 지혜로 재정한 계율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보편적인 상식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살아있는 생명 해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불살생계) : 사람은 자신의 분노나 미움에 의해 다른 생명에 해를 주고 싶어지는 감정에 빠집니다. 또 우리 몸에 대한 집착으로 다른 생명에 해를 주고 싶어지는 감정에 빠집니다. 불살생계를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나 미움, 애착 등의 감정에 이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계에 예외를 붙이면 마음은 향상하지 않습니다. 불필요한 변명을 하면 자신의 감정에 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먹기 위해서라면 물고기를 잡아도 좋지 않은가! 좋지 않습니다. 물고기도 살 권리가 있습니다. 내가 배고프다고 물고기들은 죽여야 하는 이유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성립된다면 사자나 호랑이가 인간을 사냥할 권리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싫을 겁니다.
그래서 계에는 예외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어떠한 생명도 죽이지 않는다는 계를 지키는 것이 어려운 것이 당연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마음의 더러움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그러나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의 마음은 확실히 맑고 깨끗하게 됩니다.
또한 살생하지 않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위험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 조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사람을 신뢰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계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자신뿐 아니라 사회도 행복해집니다.
불교의 정정진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 아직 범하지 않은 죄를 앞으로도 범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진,  
㉡ 범해 온 죄를 지금부터는 범하지 않는다고 하는 정진,
㉢ 행했던 적이 없는 선을 지금부터 행한다고 하는 정진,  
㉣ 지금까지 행해 온 선을 완성시킨다고 하는 정진입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살생하지 않도록 정진하여 팔정도를 실천해야 합니다.
죄를 범하지 않는 생명은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 이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과거부터 상상을 초월할 정도의 죄를 범해왔습니다. 비록 이생에서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거에 범한 죄가 가득 있습니다. 그래서 죄를 범한 것 자체는 깨달음의 큰 장애가 되지는 않습니다. 만약 그러한 조건이라면 사람은 누구도 혼자서 깨달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죄를 범했던 적이 있다」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면서는 깨달을 수 없다」라는 것입니다. 죄를 범한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더럽히는 것입니다. 깨닫는다고 하는 것은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살생하던 사람도 그 행위를 그만둔다면, 「깨달음」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살생의 죄는 스스로 죽이거나 혹은 명령해서 죽이게 한다는 2가지의 조건이 필요합니다.
살생계의 의미는 「너는 다른 생명을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일 다른 생명을 해쳤을 때는 다음과 같은 불이익이 나타납니다.
가) 눈, 귀, 코와 팔, 다리 같은 신체기관이 불구가 된다.
나) 평생 동안 건강하지 못하고 생기가 없이 창백한 외모를 갖게 된다.
다) 무기력증이 있게 된다.
라) 효율성이 부족해진다.
마) 위험이 닥칠 때 겁을 먹고 두려워한다.
바) 남의 손에 죽던가, 제 손으로 목숨을 끊는다.
사) 병약하다.
아) 친구가 없다.
자) 수명이 짧다.

두 번째. 주지 않는 물건 가지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불투도계).:자신의 몸을 지키기 위해서는 밖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기 자신도 살 권리가 있고, 자기 자신도 죽음을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밖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취할 권리도 성립됩니다.
그러나 그 취하는 것은 주어진 것이 아니면 안 됩니다. 주어졌다고 하는 것은 그만한 공헌을 해서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일을 게을리 하면서 월급만은 받는다면 투도입니다. 노동법에 따라서는 월급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해도, 진리의 세계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간은 앞날이 불안하므로 여유분을 가지고 싶은 마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부정한 방법이라도 다른 사람보다 먼저 그 여유분을 확보하기위해 노력합니다. 그 감정은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입니다. 어떤 것이라도 훔치는 경우는 상대의 행복에 대한 분노, 미움, 질투가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불투도계를 지키려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의 더러움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욕구와 분노를 제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소욕지족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키기 힘들지만, 지키면 확실히 마음이 맑고 깨끗하게 되어 마음의 성장과 지혜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불투도계를 지키는 사람은 사회에서도 신뢰하게 됩니다. 이 계에 의해 자기 자신이나 다른 사람도 행복하게 됩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로 고통을 받기 쉽습니다.
가) 가난
나) 고통
다) 기아
라) 불만족
마) 사업하는 데 무능력해서 재산을 잃는다.
바) 수재, 화재, 도둑 그리고 사악한 자식을 둔다거나, 폭군 같은
    통치자 아래에 있게 되는 다섯 가지 재난을 겪는다.

세 번째. 잘못된 성적인 행위를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불사음계). : 재가자들의 성행위에 대해서 불교에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간악한 행위는 하지 말라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불교에서는 성행위를 자손을 만드는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즐기기 위한 행위는 아닙니다.
자식을 만들어 성장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수고로운 일입니다. 그래서 아무런 즐거움도 없으면 자식을 만들지 않을 우려가 있기에, 약간의 「사탕」을 준 것입니다. 그러나 받는 사탕보다는 그 후 해야 할 일이 훨씬 큽니다. 부부가 일생 사이좋게 지내면서 아이가 독립할 때까지 노력한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럴 책임이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자유로운 성행위는 금지하고 있습니다. 법적으로 제대로 한 자신의 상대가 아니면 성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부가 사이좋게 지내고, 아이를 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을 불교에서는 하나의 선행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는 일부일처제가 아니면 안 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그 나라의 법률에 따라 일부다처제이든 다부일처제이든 그것은 나라마다의 법률이기에 그것을 두고 종교적인 행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불교의 윤리적인 측면에서 생각하면 성적 행위는 「책임」과「권리」의 문제입니다.
다만 수행에서는 성행위가 방해가 되는 요인입니다. 수행은 하나의 대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고, 성행위는 상대에 사로잡히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밖의 대상에 지배되지 않는 수행과는 다르게, 성행위는 철저하게 밖의 세계에 지배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출가자에게는 남녀관계가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욕구」라고 하는 글자를 붙인 말에는 성욕, 애욕, 금전욕, 권력욕, 명예욕, 지식욕, 지배하고자 하는 욕구, 지배되고 싶다는 욕구, 홀로 살고자하는 욕구, 의존욕구, 열등감의 모든 콤플렉스의 근원인 욕구 등이 있습니다. 지혜 없이 감정의 노예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욕구를 좋아하기도 하고, 욕구로 인해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욕구를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끼리 연결을 만듭니다. 그래서 성욕과 지배욕구가 연결되고, 성욕과 명예욕도 연결되고, 성욕과 식욕도 연결됩니다. 부처님은 이것들을 구별해서 따로 따로 관찰하라고 하셨습니다.
술에 빠지는 것, 도박과 같이 성적 놀이도 불교에서는 죄가 됩니다. 계율은 법률과 같습니다. 불교는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는 길을 가르칩니다. 관리하지 않는 성욕은 의존증에 걸립니다. 성욕에 빠지면 지혜가 전혀 성장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개발하지 않고 동물과 같은 정신 상태로 있다면, 불교를 배우는 의미도 없어집니다.
재가자에게는 부적절한 성적인 행위만 금지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성적 행위는 자손을 만들어 길러내는 몹시 고귀하고 중대한 책임있는 행위라고 이해합니다. 성을 놀이로 하여 「자신이 떨어지는 함정을 스스로 판다」는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못된 성적인 행위를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로 고통을 받습니다.
가) 비우호적인 사람들을 많이 사귀게 된다.
나) 많은 적들을 갖게 된다.
다) 이익과 보상을 얻기가 힘들다.
라) 평온함과 행복이 없다.
마) 여자로 다시 태어난다.
바) 중생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 남자로 다시 태어난다 해도 몰락하는 집안에 태어난다.
아) 부끄러움과 불명예로 고통 받는다.
자) 기관의 기능이나 성격에 결함과 장애가 있다.
차) 지나친 격정과 근심으로 고통 받는다.
카)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게 된다.

네 번째.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不妄語戒) : 거짓말을 버려버리고, 거짓말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멈춘다는 것보다 「거짓되게 말하는 것을 버린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불결하고 더러운 쓰레기는 쉽게 버립니다. 버려도 기분은 좋아집니다. 거짓말이라고 하는 불결하고 더러운 행위를 버립니다.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맑고 깨끗한 마음이 됩니다.
다만 「진실을 말해서, 진실과 연결된다.」라는 거짓말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말해야할 것인지와 긍정적으로 말한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말하는 것은 사실이어야 하고, 진리가 아니면 안 됩니다. 그럴 경우 듣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사실이라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알기를 원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국가 비밀과 같은 것도 있고, 「남편이 바람피우고 있다」라고 부인에게 말하는 것으로 가족들이 불행하게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오로지 진실만을 말한다.」만으로는 불망어계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세상을 속이는 것이 없다.」라는 말은 이 때문에 있습니다. 이와 같이「부처님의 제자들은 완전하게 무엇을 말하는지, 언제 말하는지, 도움이 되는 긍정적인 마음을 일으키는 지를 살펴서 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의  두 번째는 「이간질하는 말을 멀리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을 더욱 더 사이좋게 하는 말을 하여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사랑해서, 화합을 즐기도록, 화합을 가져오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간질하는 말은 단순한 소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쪽에서 들은 것을 이쪽에서 다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과장된 쇼적인 이야기가 분위기를 살리기에 시간 때우기에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도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되어야하기에 서로를 이간질하는 말은 다툼을 가져오는 비도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화합이 필요하고 평화가 필요합니다. 싸움이 있는 사람들 간에도 누군가가 중재해서 화해시키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사이좋게 만드는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기저기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화해시키려고 자신의 마음의 평온함마저도 없애버린다면  안될 일입니다. 공연한 참견은 멈추어야 합니다.
말하는 것의 세 번째는 「악담하는 말을 버리고 악담하는 말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인데, 말함에 실수가 없고, 귀에 듣기 좋고, 애정으로 가득 차서 마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우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그러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악담이란 난폭한 말입니다. 화내거나 싸울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비방하거나 중상하는 말입니다. 차별하는 말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입니다. 똑같은 난폭한 말에서도 상대가 그것을 기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아이고, 내 새 ㄲㅣ!」라고 하는 경우는 비방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스러운 말(愛語)인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람들의 말의 사용법, 표현력, 사투리 등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실수가 없는 말, 마음에 좋은 영향을 주는 자애로 가득 찬 말, 많은 사람들에게 환영받는 말을 말하라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의 네 번째는 「잡담하는 말을 버리고 잡담하는 말로부터 멀어진다.」는 것인데, 적절할 때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의미 있게 말하고, 법을 말하고, 계율을 말하고, 마음에 바르게 남게 말하고, 비유가 있는 말을 하고, 단락이 있도록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잡담」을 경고하는 계율입니다. 세상에서는 기분 좋고 단순하게 대화를 즐기기 위해서 말하는 의미 없는 잡담을 합니다. 말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고 이야기하는 경우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것, 느낀 것, 감정을 그대로 말할 뿐입니다.
스트레스를 발산하기 위해서 이야기하고, 상대가 들으려는 마음이 없어도 이야기하고, 적당한 시간이 지나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것을「잡담」이라고 합니다. 잡담은 말하는 사람에게도, 듣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말하고, 비유를 사용해서 말하고, 의미가 있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말하는 소리에 마음을 두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잘 통하도록 단락을 지어서 말하고, 상대의 이해 능력이 향상하도록 말하며, 도덕심이 일어나도록 말을 하면 자기 자신의 마음은 향상되고, 사회에서도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말을 한다는 것은
㉠ 상대를 속이는 마음,
㉡ 사실과 다르게 말하거나 글을 남기거나 몸짓 등의 수단으로
   표현하는 것,
㉢ 상대가 그것에 따라 속는 것,
이 3가지 조건이 갖추어지면 「거짓말을 한 죄」입니다. 죄의 경중은 각 조건의 무게에 의합니다.
예를 들어
㉠의 조건은 상대에게 손해를 주고 싶고, 자신이 무엇인가 이득을 얻고 싶고, 상대를 미워하고 있는 등에서는 무거워지고, 조금 웃기고 싶은 것뿐의 마음이라면 가벼운 악행(장난 정도)이 됩니다.
㉡의 조건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스스로 알고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들은 정보를 사실이라고 믿어 사람들에게 그것을 말했는데 상대방이 손해 보았을 경우, 또는 그때는 알지 못하였지만 다음에 본인이 그 정보가 거짓말이었다고 알아도 「거짓말을 한 죄」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말한 순간에 자신은 사실을 말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과 다르게 말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첨이라는 말은 좋지 않습니다.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는 것, 조화로움, 모두 밝고 사이좋게 하는 것이 소중한 일이라고 이해해서 말을 해야 합니다. 말하는 목적을 「선함」 쪽으로 바꾸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되고, 무엇을 말하면 좋을 것인지 지혜가 생깁니다. 아첨이라는 말이 머릿속에 있는 한 악행이 되므로 그러한 마음은 되돌리는 것이 좋습니다.
가벼운 거짓말이라도 하게 되면 바른 노력이 되지 않습니다. 선행은 불완전한 상태가 됩니다. 어려울지라도 「비록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라고 결의하여 노력하면 서서히 지혜가 성장하는 것을 스스로 알 것입니다. 지혜 있는 사람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다음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됩니다.
가) 언어 장애가 온다.
나) 뻐드렁니가 생긴다.
다) 구취가 심하다.
라) 피부가 건조해진다.
마) 눈, 귀 같은 감각기관이 둔감해진다.
바) 외모가 비정상이거나 기형이 된다.
사) 다른 사람에게 권위를 행사할 수 없다.
아) 말이 거칠어진다.
자) 비정상적인 행동을 한다.

다섯 번째. 방일의 원인이 되는 술이나 약물들을 멀리하는 계를 받아 지키겠습니다(不飮酒戒). : 술을 마시는 행위를 버려버리고 그것으로부터 멀어져야 한다는 불음주계는 재가자의 오계 가운데 마지막에 놓여 있습니다. 앞의 네 가지와 다르게 불음주계는 그 자체로는 죄가 되지 않지만, 다른 것들의 원인이 되고, 다른 것들을 함께 일어나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방일하게 해서, 계속 마시면 중독 증상을 나타내기 때문에 멀리해야 합니다. 방일의 원인이 되는 곡물이나 꽃, 열매 등을 가지고 만든 술을 마셔서도 안 되고, 그러한 조건으로부터도 멀어져야 합니다.
˝출가자라면 몰라도, 재가 신자까지 술을 마실 수 없게 할 수 없기에 취하지 않게만 하면 무방하다〃고 반발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출가자는 이미 출가하고 있기 때문에 미혹됨이 적어 조금의 술로는 타락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재가자는 세속의 생활에 젖어있으므로 미혹됨이 많아 조금의 일로도 타락할 위험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변명을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죄를 범하기 쉬운 범부중생이기에 더욱 엄격한 계율이 필요하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술은 사람을 게으름피우게 한다. 술에 빠지는 사람에게는 6가지 재난이 뒤따른다.」고 중부 경전 31경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숫따니빠따」에 의하면 「불음주의 가르침을 기뻐하는 재가자는 다른 사람에게 술을 먹여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 된다.」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자기 자신이 법을 실천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도 법의 실천을 권하지 않는 사람을 「양쪽 끝은 불타버리고, 가운데는 똥이 묻은 막대기와 같다」고 하시면서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도 법에 맞게 인도하여야 합니다.
술, 담배, 마약 등을 하는 경우에 다음과 같은 좋지 않은 결과가 초래됩니다.
가) 사람의 행동에 대한 판단이 부정확하다.
나) 나태하다.
다) 건망증과 장차 미치게 된다.
라) 친절과 이익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마) 도덕적인 수취심과 두려움이 없다
바) 불건전한 일을 하기 쉽다.

등명Padipeyyo () 2020-11-13 01:34:00 |  
원문에 있는「아이고, 내 새ㄲㅣ!」에서 "새ㄲㅣ"가 금지어로 설정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아이고, 내 새ㄲㅣ!」으로 바꿔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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